EP1. 1년만에 다시 돌아온 나의 폭식.
내가 최근 빠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이런 명대사가 있다. "나를 추앙해요." [사전적 의미 :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 나는 누군가를 추앙하기는 커녕, 나 자신도 추앙하지 못한채 폭식을 추앙하고 있다. 높이 받들어 주려던 것도 아닌데 그새를 못참고 또 찾아왔다. 차라리 폭식하고 있을 이 시간에 아무나 추항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이 끈질긴 폭식과 이별을 하고자 해방일지를 적어보기로 했다.
22년 시작된 극심한 폭식일지의 끝을 올 초에 끝내려고 했기에 한동안 관련 글을 쓰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사 등 환경을 비롯한 안좋은 습관들을 바꾸려고 노력한 결과 1년동안 10kg가 감소했고, 그렇게 유지될 줄 알았다(유지될 줄 알았죠?.. 돌아오는 건 한순간). 남들은 미국 일년살기를 결정하기까지 고민하는게 영어, 돈이라던데 나는 그 둘도 아니고 '폭.식.'이 문제였다. 한번 쯤 겪어본 사람이라면 소중한 시간, 건강을 잃어간다는 게 얼마나 눈물나게 힘든지 알지 않을까.. 매일 매순간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진심으로 음식중독일 바엔 술, 담배에 중독되는 게 차라리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미국생활 2개월 차,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일주일 전부터 폭식이 시작되었다. 다시 혼자 있게 된다는 게 내겐 그렇게도 지독하게 싫은 느낌이었을까.. 그렇게 독립적이었던 내가 30대가 되고나니 얼마나 외로움에 취약한지 새삼알게 되었다. 폭식증이 그거 딱 하나 알려줬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먹었는진 눈앞에 펼쳐진 쓰레기와 퉁퉁 부운 몸, 그리고 증가한 체중이 결과로 알려줬다. 30대를 또 다시 이렇게 시작하다니 눈앞이 막막했다. 불과 2달 전 입었던 옷이 더이상 맞지 않을 정도로 급격하게 체중이 증가했고, 우려했던 사실이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에 큰 좌절감과 절망감을 가져오는지 새삼 느꼈다. 행복해도 모자랄 미국 일년살기가 폭식이라니. 미국 일년살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폭식을 극복했다 생각했는데, 그 결과로 다시 시작되었다.
손석구씨 같이 멋진 사람도 아닌 그저 누군가 짠!하고 나를 구원해주길 바라지만 내가 겪었던 폭식엔 그런 해피엔딩은 없었다. 그래서 나의 폭식 해방일지를 기록하며 미래에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아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내가 겪었던 폭식엔 하루하루가 쌓여 극복이 있었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나에게 폭식이 다시 시작된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직장인이자 문과생이었던 내가 매일 영어로 된 교재로 이과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고, 아무도 없이 홀로 이곳에 지낸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인을 회피하려고 하니 남는 건 채찍질에 지쳐버린 몸과 마음뿐이었다.
20대엔 열심히 살아야하고, 운동도 매일가야 한다며 채찍질 했던게 잘 먹혔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30대의 나는 이미 그 채찍질이 안먹힌 다는 것을. 그리고 나만이 해결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 미국까지 와서 여행일기를 쓰기도 모자란 이 시간에 폭식일기라니, 내 스스로가 조금 짠했다. 그래서 써보려고 한다. 나의 폭식 해방일지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이젠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내 스스로를 먼저 추앙해주는 사람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