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도파밍 #3
안녕하세요, 뉴스레터 <도파밍>의 에디터 온입니다.
흔히 우리는 포옹을 따뜻함이나 애정, 사랑을 전달하는 행위라고 여기지 않나요?
그런데 여기, 만리장성 위에서의 포옹으로 이별을 고한 연인이 있어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The Lovers : The Great Wall Walk (1988)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입니다. 둘은 1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함께 작품 활동을 이어 간 작업 파트너이자 삶의 동반자였어요. 그들은 헤어짐의 순간까지도 예술로 승화시켰는데요. 마리나와 울라이는 만리장성 양 끝단에서 걷기를 시작한 지 90일 만에 만리장성의 중간 지점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고, 가벼운 미소와 포옹을 끝으로 작별하게 됩니다.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의 이름은 정확히 모르더라도, 한 번 쯤은 그녀의 퍼포먼스들을 스쳐가듯 접한 적 있는 분들은 많을 것 같은데요. 그녀의 대표 퍼포먼스들 몇 개를 지금부터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Rhythm 0 (1974)
테이블 위에 장미, 향수, 칼, 한 발이 장전된 총 등 72가지 물건을 놔둔 채 마리나는 6시간 동안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메모지를 써붙혔죠.
퍼포먼스 초반, 사람들은 그녀를 깃털로 간지럽히거나 장미꽃을 건네는 등 제법 평온한 분위기가 유지되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자 사람들은 폭력성을 띄게 됩니다. 3시간이 지나자 마리나의 옷이 모두 찢겨져 나가고, 누군가는 장미 가시로 마리나를 찌르거나 마리나의 목을 면도칼로 긋는 등의 행위들이 이어졌어요. 마리나의 머리에 총구가 겨눠지자 관람객들이 이를 저지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네요.
흥미로운 점은, 6시간이 되어 마리나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녀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행한 이들은 그녀를 마주하지도 못한 채 달아나버렸다는 건데요. 저는 이 이야기가 여성 누드화를 관음증의 시선으로 소비하던 많은 이들이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올랭피아> 속 누드 여성이 자신들을 빤히 쳐다본다며 불쾌해했던 일화와 겹쳐보이기도 했어요.
어쨌든, 마리나 이브라모비치는 이렇게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폭력, 죽음 등의 주제를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활동을 많이 보여주었답니다.
✸ 마리나 이브라모비치와 울라이, 예술적 삶의 동반자
Breathing In/Breathing Out (1977-1978)
이 퍼포먼스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진행됐던 퍼포먼스예요. 코로 숨을 쉬지 않고 오직 키스를 통해 두 사람이 주고받는 날숨으로만 호흡을 지속하는 퍼포먼스인데요. 둘은 19분 간 그 상태를 지속하다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기절하는 것으로 퍼포먼스가 끝이 났어요.
Rest Energy (1980)
활대를 잡고 활과 마주한 마리나와 그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울라이. 자칫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는다면 활은 마리나의 심장에 박히게 되겠죠. 남성과 여성 간의 사회적 관계적 우위, 그리고 연인 간의 믿음과 신뢰를 표현하고자 한 퍼포먼스로 4분 여 동안 진행되었어요.
✸ 과거의 연인과 재회하는 순간
The artist is present (2010)
마리나는 움직임 없이 계속 앉아있고, 맞은 편 의자에는 관람객들이 교대로 앉아 아무 말, 아무 행동없이 그저 서로를 응시하는 퍼포먼스였는데요. 이 퍼포먼스는 MoMA에서 2010년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진행되어 무려 736시간 30분 동안 지속되었고, 1,545명이 마리나의 맞은 편에 앉았다고 해요 (누적 관람객은 뉴욕 인구수보다 많은 850만 명이라는…)
일반인들부터 유명인사들까지 그녀 앞에 앉고자 MoMA를 찾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를 일으켰던 것은 퍼포먼스 첫째날 밤, 그녀의 전 연인이었던 울라이가 착석자로 깜짝! 참여한 일이었어요. 마리나와 울라이는 <The lovers> 이후 22년 만에 재회하게 된건데요.
울라이가 자신의 앞에 마주앉자 마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라이와 두 손을 맞잡습니다. ‘착석자는 상대를 만지거나 말 걸지 않는다’라는 퍼포먼스의 규칙을 깨버린 거죠!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갖지 않고, 관객들 모두 마리나와 울라이의 교감에 환호했다고 해요.
✸ 마침내, 마침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 그리고 마리나와 울라이에 대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앞에서는 그냥 ‘포옹으로 이별을 고한’ 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만리장성에서의 포옹은 그들의 삶에서 가장 무겁고 따뜻한 포옹 아니었을까 해요. 만리장성에서의 포옹과 미술관에서의 짧은 악수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2020년, 울라이가 타계하여 이 둘의 이야기에도 결국 마침표가 찍힌 셈인데요. 마리나가 그를 추모하며 했던 말로 글을 마칠게요.
"오늘 그의 죽음을 알고 커다란 슬픔에 잠겼다. 그는 뛰어난 예술가이자 한 인간이었고 그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다만, 그의 예술과 유산이 영원히 살아있으리란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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