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근무 조작, 음주운전, 총기 분실 도 넘은 군기 문란

조선일보 2019.04.11

by 밀덕여사

[흔들리는 외교안보] [5] 나사빠진 軍


최근 군 내부에선 기강 해이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각종 음주 사고와 함께 장성들의 갑질, 장교들의 출퇴근 조작 사건까지 이어지면서 군이 총체적으로 나사가 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군 오산 기지 소속 군의관 9명이 한국군과 미군이 같은 기지를 사용하는 점을 악용해 출퇴근 시간을 조작한 혐의로 10일 적발됐다. 오산 기지는 우리 군과 미군이 관리하는 게이트의 출퇴근 기록 시스템이 다르다. 우리 군 게이트를 통과할 때 출입증을 찍으면 자동으로 출퇴근 기록이 남지만, 미군 게이트는 출입 기록이 자동으로 남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군 게이트로 출근한 뒤 미군 게이트를 통해 일찍 퇴근하거나 미군 게이트를 통해 지각 출근하고도 근무시간을 제대로 지킨 것처럼 보고했다. 일부 군의관은 하루에 반나절만 근무한 날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이 중 3명은 형사 입건하고 나머지는 징계 조치했다.

noname01.jpg

이 군의관들의 근무시간 조작은 지난 2017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어졌다. 작년 12월 국민신문고에 익명의 제보가 없었으면 모를 뻔했다. 군의관들은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출퇴근 조작을 계속했다. 군 관계자는 "게이트 출입 내역과 진료 기록을 대조해 조작을 밝혀냈다"고 했다. 공군 의무실은 이 사건 이후 직무 기강 교육을 실시했고, 지난 3일부터 16일까지 전 의무부대를 대상으로 특별 점검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강원도 전방의 한 의무대에서는 간부 9명이 술을 마신 뒤 음주 운전을 하다가 부주의로 일행을 차로 친 일이 벌어졌다. 사고 직후 다친 간부들은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경찰이나 헌병대에 신고하지 않고 사고를 숨겼다. 하지만 지난달 국방 헬프콜을 통해 그 사실이 폭로됐다. 군 관계자는 "사건 발생 당시 지휘관이 '부대 내에서 이 사건을 덮자' '이 일이 새어나가면 부대는 해체'라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도 있어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 이 부대에서는 작년 10월 간부가 장병들에게 폭언·폭행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고, 성희롱 의혹 사건도 불거졌다.


한미연합사령부의 A장성은 작년 미군들과의 회의 도중 '제대로 통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통역 장교의 머리를 때렸다. 그는 이 같은 '갑질' 행위로 국방부 감사관실에서 징계 처분을 받았다. A 장성은 일부 '공금 유용' 혐의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미군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잘못이라는 판단이 있었다"고 했다.


최근 충청 지역의 한 부대는 '실체 없는 총 분실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무기고 담당자가 보관 중이던 M16A1 소총 한 정이 없다는 사실을 5개월 동안 숨겼다가 이를 뒤늦게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조사 결과, 지난 2012년 총기 현황을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총기 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밝혀졌다. 이 부대는 지난 7년간 이런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래 들어 '총체적 군기 문란'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말 주요 지휘관과의 화상 회의에서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는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상황의 엄중함을 명확히 인식하고 우리 스스로 의식을 전환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정 노력을 기울이라"고 지시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군 기강 해이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우리 군은 근절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사고는 그치지 않아 군의 약속은 공염불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며 "이 정도면 우리 군이 스스로 자정 노력으로 해결 못 할 수준"이라고 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8화“적 사라진 군… 안보관 약화 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