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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준 Nov 23. 2022

1. 대한민국 최고 기업, 그 속의 나

제조 대기업에서 IT 스타트업으로

대한민국 최고 기업, 그 속의 나

 최근에는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비교적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대기업은 기업 규모에 따른 용어이고 스타트업은 기업의 생성 배경이나 발전 단계에 따른 용어이므로 둘을 함께 언급하는 것이 조금 어색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를 조금 양보하여 대기업을 기업의 발전 단계 측면에서 '다양한 비즈니스들이 성공하여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확보하며 규모가 매우 커진 기업' 정도로 정의한다면,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다는 것은 매우 안정적인 기업을 떠나 위험성 큰 작은 기업으로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정을 떠나 위험을 찾아간다니, 언뜻 듣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이 행동을 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겁니다. 비즈니스 플랫폼인 리멤버가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이직 결심 이유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7.1%가 '다양한 업무 기회'라고 답변했고 '금전적 보상'이 28.6%로 2위, '스타트업의 업무 문화'가 12.7%로 3위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에 하나씩 다루겠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기업, 삼성전자


 저는 지난해 6월 말 퇴직할 때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IT조직에서 7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일했습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현재 약 370조 원으로,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100조 원이 넘었습니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증권시장 규모가 2649조 원이라고 하고 현재 삼성전자 주가가 많이 하락한 것이니, 넉넉하게 잡아도 우리나라 전체 기업 규모의 15%를 혼자서 차지하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 기업입니다.

 기업 규모만큼이나 삼성전자 임직원 수도 22년 6월 기준 117,498명 엄청난 규모를 자랑합니다. 이처럼 많은 인원에다가 각 부문이나 사업부도 매우 많기 때문에 복지 제도 자체는 동일하여도 적용은 실제 근무 환경, 같이 일하는 동료, 부서장 그리고 멀게는 사업부장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제가 일했던 반도체 부문 IT조직은 삼성전자 에서도 근무 강도가 약하고 복지가 좋기로 유명합니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오랜 기간 동안 슈퍼 호황기를 맞이했고, 지금까지의 삼성전자 전략이 잘 맞아 들어가 압도적 격차를 가져온 덕분에 주체할 수 없이 돈을 벌고 있어서 부문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최근 국내외 IT기업들에서 파격적인 근무 환경과 복지를 제공하는 바람에, 핵심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근무 환경과 복지 제도 개선이 제가 근무하기 전부터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좋은 근무 환경


 하루 최소 근무시간 4시간만 채우기만 하면 월 단위로 주 40시간 이상만 근무하면 되는데, 예를 들어 2주 간 하루 2시간씩 총 10일, 20시간을 초과 근무하면 나머지 2주는 6시간씩만 근무해도 됩니다. 물론 실제로는 인사팀에서 이런 식으로 자주 근무하는 임직원 명단을 취합하여 주기적으로 부서장에게 협박 메일을 보내긴 하지만, 그것을 직접적인 근거로 고과에 반영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최근 입사하는 젊은 직원들은 개의치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사팀도 직원인지라 끊임없이 새롭고 이상한 지표를 만들어서 임원들에게 성과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협박 메일을 받는 부서장 눈치를 보느라 장단에 맞춰주는 직원들도 있었고 근무 시간이야 어떻든 맡은 업무를 잘 해내면 되지 않냐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특근 수당을 위한 생계형 야근, 권력지향형 자발적 야근, 업무 열정형 야근 등이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의 업무 강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근무하는 동안 서서히 변화된 것 중에는 여름 반바지 착용이 있습니다. 입사 당시에도 청바지 정도의 캐주얼은 가능했지만 어느 정도 규칙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반바지를 입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물론 초기에 오래된 직원들은 마음에 들지 않아 핀잔도 주고 했지만, 대세로 자리 잡은 이후에는 혹여나 꼰대로 보일까 두려운 지 핀잔도 없어졌습니다.


 좋은 복지


 이외에도 서울 전역을 촘촘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출퇴근 전세버스, 24시간 운영되는 공장 특성에 따라 삼시 세 끼에 야식까지 공짜로 먹을 수 있는데 심지어 다양하고 맛있기까지 한 식당, 자사 제품은 비교적 싼 패밀리넷몰, 당첨되면 5000원으로 이용 가능한 에버랜드, 실비와 관계없이 본인/배우자/자녀까지 지원해주는 의료비, 사내 무료 병원, 자녀 대학 등록금 전액 지원, 사내 어린이집, 퇴사 이후 신설 무급 자기 계발 휴가 1년, 월 35000원의 신라호텔 소속의 사내 피트니스, 수영장, 결혼 도우미 지원, 삼성전자 서초사옥 3시간 무료 주차 등 열거하기도 힘든 복지 혜택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지 중의 복지인 연봉도 비록 성과급 구조여서 계약 연봉이 높은 것은 아니고 매해 받는 고과에 따라 점점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원천징수 기준 보통 높은 편입니다.


 그 속의 나


 써놓고 보니 저런 좋은 곳에서 제가 왜 퇴사를 한 것인지 잠깐 상념에 젖게 됩니다.

 

 금융공학도의 꿈과 좌절


 저는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금융공학을 연계 전공하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2007년, 한창 경기가 호황이어서인지 금융공학이 유행하였고 어릴 때부터 돈에 관심이 많던 저는 당연한 듯 금융공학을 연계 전공하고 경영대 투자 학회도 가입하여 2년 간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 학회 활동 도중인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고, 그렇지 않아도 금융공학의 꽃인 퀀트 투자에 수학의 천재성이 중요한 것에 좌절을 겪던 저는 뭔가 자연스럽게 금융공학도의 꿈을 접고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개발자 1.5세대, 아버지


 제 아버지는 1981년에 대기업 보험사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신 우리나라 개발자 1세대와 2세대의 중간 세대 개발자이십니다. 잠깐 그 시절을 아버지께 들은 대로 묘사해보면, 입사 당시에는 회사에 컴퓨터가 없어서 외부 기관에서 IBM 360,370 시리즈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현재 삼성SDI 의 전신인 삼성-NEC의 NEC 100,150을 도입하였는데, 이 컴퓨터의 최대 가능 메모리 용량은 2MB였습니다. 요즘 보통 컴퓨터 메모리가 작게 잡아도 2000배 더 큰 4GB  것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하드 디스크는 KB 단위였고, 프로그램의 경우 초기에 천공 카드에 작성하고 고무줄로 묶어 보관하다가 8인치 디스켓으로 넘어가셨다고 합니다. 전산실 컴퓨터는 60평 정도의 한 층 전체 크기만 했고 주로 어셈블리어, PL/I, 코볼이 주 언어이셨습니다.

 재미있는 건 아버지도 8년 정도 대기업 프로그래머로 일하 퇴사하셨고, 이후 컴퓨터학원을 설립해 교육자로서 수십 년간 일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자연스레 저의 어릴 적 놀이터는 아버지의 컴퓨터학원이었고 장난감은 펜티엄 286에서 586까지의 컴퓨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에게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반도체가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다

 

 군 제대 후에는 금융공학이 아닌 산업공학에 몰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최적화와 수리적인 능력이 꽃인 산업공학 공부에서 저는 번번이 보통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항상 컴퓨터 관련된 과목만 A 이상을 받게 되는 제 자신을 보며 기쁨보다는 주전공 잘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컴퓨터만 잘하는' 산업공학과 아웃사이더였고 결국 졸업 때까지 극복하지 못한 채 취업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2013년도입니다.

 그 시절 대부분의 같은 과 학생들은 호황이었던 금융업, 기름집(정유업), 중공업에 관심이 많았고 일만 많기로 유명한 삼성전자, 특히 반도체 부문은 대규모 채용 결정 소식에도 불구하고 기피 대상이었습니다.

 저는 학점이 보통 수준인 데다 여유 시간에 아르바이트로 과외 수업을 해온 핑계 덕에 당시 흔했던 교환학생, 어학연수 등의 스펙도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자소서에 '교내 학생식당 모니터링을 통한 서비스 품질 향상' 아르바이트에 대해 장황하게 썼던 기억이 납니다. 좋은 스펙도 없고 돈도 필요했던 저에게 '그래도 돈은 꽤 준다는' 삼성전자, 더군다나 산업공학 전공에 더해 개발 능력을 우대한다는 공고는 단번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삼성전자 IT조직은 '기흥화성단지총괄'이라는 정말 IT 스럽지 않은 이름의 하위 조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피하는 회사에 이름까지 거부감이 들었던지 동기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여기를 지원한다고 하니 한 동기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왜 지원하냐 물었고,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에는 거의 모든 제품에 반도체가 들어가게 되고 반도체가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라 생각해. 그럼 삼성전자가 어느 정도 잘하기만 해도 적어도 망하지는 않을 거야. 지금 대규모로 뽑는다니까 나한테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어."


 운이 좋게도 그렇게 근거 없던 저의 주장은 삼성전자의 초호황 시작과 함께 맞아 들어갔고, 점점 좋아지는 근무 환경, 연봉 및 복지 등과 함께 어느덧 대한민국 최고 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상대로 승승장구한 반도체 덕에 제 인생도 점점 빛을 보게 됩니다. 더군다나 입사해서 하는 일이 온통 컴퓨터 관련된 일이다 보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회사 생활을 약 5년 간 하였고 그 사이에 운명의 상대를 만나 결혼 후 행복한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와중 불현듯 인생의 중요한 계기가 찾아왔는데, 이는 곧 퇴사의 결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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