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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스파 Aug 03. 2024

함께가 아니어도 좋은 여행,
함께라면 더 좋은 여행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 봄에, 집사람이 그동안 열심히 나 몰래 비상금을 모아 놓았다고 고백을 했다. 굉장한 액수는 아니었지만 매달 조금씩 모아 상당한 액수를 만들었다고 하길래, 

그래 나 몰래 모으느라 고생했다, 괜찮으니까 너를 위해서 모두 쓰라고 얘기했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해외여행을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해외여행 그렇게 가고 싶은 생각 없는데..,...”

“아니 여보 말고 막내랑 둘이서.”

“난 아니여? 뭐 그래 난 어차피 바빠서 시간 못 내니까 막내랑 갔다 와. 근데 어딜 갈라고?”

“언니 있는 독일.... 우리 집에서 엄마나 아빠, 동생들까지 나 빼고는 다들 몇 번씩 다녀왔잖아. 나만 못 갔는데 이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 같아서..... 거기 갔다가 프랑스도 가고 네덜란드도 가고 뭐 그래보려고”

“처형네 간다는 건 패키지가 아닌 거잖어. 근데 프랑스도 가고 네덜란드도 가고 그런다고? 너네 둘이서?”

“그냥 렌트해서 가고 비행기 타고 가고 그러면 돼”     


매일, 매달, 매년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힘들어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려고 하는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집사람이라 어찌어찌 돈을 모았다 하니 다녀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경험도 없는 유럽을 막내와 간다는 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어쩐지 몇 달 전부터 앱으로 영어공부를 그렇게 한다 했더니, 

집사람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결국, 다음 해에 군대를 가는 첫째 아들놈을 딸려 보냈다.      

출국하는 날 새벽같이 인천공항에 가족들을 데려다주고 돌아와, 혼자 집에 남겨진 홀아비 티를 내지 말자는 생각에 김치찌개 한 솥과 북엇국 한 솥을 동시에 끓였다. 

김치찌개는 안주용, 북엇국은 다음 날 해장용.    

 

새벽에 첫 카톡이 왔다. 

경유지인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햄버거 비슷한 걸 먹고 있는 세 명의 모습. 너무 반가웠다. 외국인들이 배경인 사진이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런데 이어지는 얘기가, 갈아타야 하는 항공기가 결항이 돼서 독일로 못 간단다. 

항공사 측에서 미안하다고 공항 근처 호텔 잡아주고 식사비도 줘서 짐 풀고 간단하게 간식 먹고 있다고 하는데, 참나 집에서 뭘 해줄 수도 없고 걱정만 가득 안은 채 아침을 맞았다.    

 

결국은 다음 날 다른 항공기로 무사히 처형 댁에 도착했고, 독일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계신 처형이 항공기 결항은 말도 안 된다며 항공사에 항의 메일을 보내 보상금으로 90만 원을 받아 엉겁결에 외화벌이와 동시에 풍족한 여행경비가 채워졌더랬다.     


언니와 렌터카 빌려서 네덜란드 여행도 다녀오고, 셋이서 따로 항공기를 예매해 1박 하며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프랑스 디즈니랜드에도 다녀왔다. 

정말 용감한 가족이다.     

얼마 전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독일 배경으로 나왔던 장소들 기억난다며 자기들끼리 추억에 젖고, 이번 프랑스 올림픽에서도 에펠탑 등등 역시나 가봤던 장소가 지나갈 때마다 또 쑥덕쑥덕 감회에 젖는 세 명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폐업 위기를 맞기도 했고, 큰 아이는 군대에서 전역해 이제는 엄마보다 여자 친구를 더 애정하는 배신자로 컸는데, 나는 없었지만 세 가족이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는 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몇 년 후에 우리 결혼 30주년이잖아. 그때는 여보도 같이 해외여행 가자”

“난 해외여행 별로 안 좋아하잖어.”


얘기해 놓고 보니 괜히 김 빠지는 소리를 했나 싶었다.


“근데 상황 되면 제주도라고 가지 뭐.”

“그래 난 제주도도 좋아”     


얼마 전 학원에 새로 들어온 초등 3학년 여학생이 내 흰머리를 보고 염색하셨냐고 물었다.

염색을 하라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염색을 했냐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는데, 그만큼 전후좌우 완벽한 흰머리를 자랑하는 나여서 더 나이 들어 집사람이 같이 다니기 창피해하기 전에 경제적으로 좀 힘들더라도 결혼 30주년 여행은 꼭 계획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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