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뿌악 Sep 25. 2022

첫 오토매틱 시계를 중고로 팔고 느낀점

중고시장에서의 가격이 진짜 가치다


오토매틱 시계의 매력


남자라면 기계식 시계에 한 번쯤은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건전지 없이 시계가 작동된다는 것이 매력이다. 시계 뒷면의 무브먼트를 보자. 미세한 기계들이 맞물리며 움직인다. 그걸 동력으로 시곗바늘이 움직인다. 이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가 아주 귀중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애플워치가 아무리 정확하다 하더라도 그런 디지털시계는 이런 아날로그 감성을 따라올 수는 없다. 이런 시계는 시간을 정확하게 보려고 차는 것이 아니다. 오토매틱 시계는 약간의 오차에서 오는 아날로그적인 여유가 있다. 1분1초 디지털 단위로 떨어지는 전쟁 같은 평일이 아니고, 시간이 몇 분 안 맞아도 상관없는 여유로운 주말 같은 시계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시계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롤렉스(Rolex)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많은 시계 수집가들이, "시계는 롤렉스를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해 롤렉스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중 서브마리너는 롤렉스의 상징다. 1953년 출시된 후 지금까지도 크게 디자인이 바뀌지 않았고, 많은 다이버 시계들이 서브마리너의 디자인을 카피했다. 얼마나 시계가 대단했으면, 쿠바의 공산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롤렉스 시계를 선택했을까. 자본주의에 반대했던 체 게바라도 자본주의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뛰어난 방수 성능과 시인성, 시간의 정확도에 끌렸던 것 아닌가.


나는 과거 여자친구에게, 내가 완벽하다고 느낀 그 여자에게, "넌 정말 롤렉스 서브마리너 같은 여자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여자의 표정은 (ㅡ.ㅡ)? 하는 표정이었다. 이 자식이 뭔 개수작을 부리는 건지 하는 표정과 나를 그렇게 특별하게 표현해주는 남자는 니가 처음이야 하는 표정이 교차했었다. 한번 사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시 중고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없는 시계. 혹시 중고시장에 내놓더라도 가치가 전혀 훼손되지 않는 시계. 다른 시계를 산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그 가치를 인정하고 돌아오게 만드는 그런 시계.





서브마리너 카피 제품을 사고 중고로 팔았더니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사고 싶었지만, 이제 막 취직을 한 내가 그 정도 명품 시계를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위 정우성이 모델로 있는 론진(Longines)의 하이드로 콘퀘스트를 샀다. 백화점 정가는 서브마리너의 5분의 1의 가격인 220만 원이었지만, 시계 전문점에서 이것저것 할인을 받아 180만 원에 구매했다. 원하는 시계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시계를 사놓고 처음 며칠은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며칠 만에 싫증이 나버렸다. 이런 조잡한 시계를 내가 왜 180만 원이나 주고 산 거지? 오리지널적이고, 근본적이고, 원리원칙적인 것을 추구하는 나에게, 이런 카피 제품은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시계를 중고로 팔기로 결심했다. 중고나라에 하이드로 콘퀘스트가 얼마에 팔리는지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뭐? 130만 원? 백화점 새 제품이 220만 원인데 며칠 착용했다고 130만 원으로 후려치다니, 이런 날강도가 다 있나. 백화점가 1,100만 원짜리 서브마리너가 중고나라에 1,700만 원에 팔리는 것과 너무 대비되는 것 아닌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135만 원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 남자에게 시계를 팔았다. 새것 같은 시계를 왜 파시냐는 그의 질문에, 저는 그냥 카시오 시계가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런 근본도 없는 카피 제품은 다신 안 사!라는 것이 내 속마음이었다.


중고 서브마리너가 1,700만 원에 팔리고 하이드로 콘퀘스트가 130만 원에 팔리는, 시장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나의 가치 판별 능력이었다. 백화점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그저 권장소비자 가격일 뿐이다. 제조사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진정한 가치는 어디서 평가받는가. 바로 중고시장이다. 물건의 진짜 가치를 알고 싶으면 중고시장에서 얼마에 거래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누구의 개입도 없이 오로지 수요자와 공급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가격, 그것이 진짜 가치다.

작가의 이전글 자의식 과잉이 글쓰기에 미치는 영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