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짤리고 싶다는 공무원

그러니까 니가 공무원이지

어떤 공무원을 만났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회사에서 짤렸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어떻게든 노력해서 다른 길을 알아볼 텐데."

그 말을 듣고 이 사람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그 말의 의도를 알 수 있었고, 크게 웃으면서 공감을 했다.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난 어쩌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가. 평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매일매일,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것은 내 운명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주어진 운명을 극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드라마틱한 능동적 반전 없이, 어찌어찌 흘러 흘러 지금 그 자리에 앉아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얼마나 능동적이었던가.

아마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인생에 "능동"이라는 것의 비중이 더 줄어들게 될 것 같다. 내가 시간을 투자해서 이룬 것들이 많고, 그것을 다시 되돌리기에는 매몰비용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의사결정에서 매몰비용을 고려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은 아니지만, 매몰비용이 커질수록 능동적 의사결정은 더욱 어렵다. 아마 내가 만난 저 공무원도 합격을 위해 투자한 시간과 승진을 위해 근무한 시간들이 매몰비용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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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니가 공무원이지

가끔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세상에 직업이 수만 개라는데, 난 왜 하필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서 오는 회의감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구나.'하고 말이다.

내가 만난 그 공무원은, 불확실성을 싫어했고 리스크가 있으면 주로 피하는 쪽이었다. 불안한 20대에 빨리 안정된 직함을 가지고 싶어 했다. 만약 잔잔한 호수가 있다면 작은 돌을 여러 개 던지는 사람이었지, 큰 돌을 던져 그 잔잔함을 파괴해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잔잔한 돌을 꾸준하게 던져서 시험도 패스했고 무리 없이 승진도 했다. 그렇게 흘러 흘러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자기 대신 큰 돌을 잔잔한 호수에 던져주기를 바란다는 점이었다. 인생에 큰 돌을 던지는 것은 그의 성향이 아니었다. 난 그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야이 자식아. 그러니까 니가 공무원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공무원 같은 잔잔한 소리나 하고 있냐? 그만둘 용기가 있으면 당장 바위를 호수에 던져라 이 자식아.

이 자리에 있는 나를 한번 돌아보자. 나의 어떤 강점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끌었는가. 어쩌면 그 자리가 나의 강점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큰 돌을 던지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니다. 난 그 사람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존중한다. 나의 강점을 잘 생각해보면, 지금 내 자리가 좀 더 빛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