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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몰라 Dec 22. 2023

피아노 덮개의 진실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말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태어나는 것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내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다.

 그날, 동생이랑 통화 중이었다.

 “언니, 난 언니가 수능 보는 날 너무 무서웠어.”

 동생이 말했다.

 “응? 왜? 네가 왜 무서웠어?”

 20년 전의 일이라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날이 동생은 왜 무서웠을까.

 “언니가 진짜로 죽을까 봐. 언니가 나한테 나 수능 끝나는 날 죽을 거라고 했잖아. 진짜로 죽을까 봐 무서웠어.”

 미쳤다.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나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진 그 말, 동생은 20년 넘도록 마음의 짐으로 안고 살아왔나 보다. 당시 중학생이던 동생에게는 “수능 끝나고 한강에 가서 죽을 거야.”라고 내뱉은 언니의 말이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했다.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엄마의 권유로 음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부터 성악을 배우라고 했다. 엄마의 제안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피아노 치며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였기에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그 시간에 노래를 배우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거의 매일 피아노 학원에 들렀다. 노래를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음치였던 내가 제대로 된 음정을 찾아갔고, 복식호흡과 함께 내 성량은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는 그 작은 방의 공기가 나의 목소리로 채워질 때면 내 허리는 더 꼿꼿해졌다. 선생님도 변화되는 내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력이 느는 너를 가르치는 것이 뿌듯하다 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고, 그 누구보다 재밌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바뀌었다. 대학 교수에게 배워야 음대에 수월히 갈 수 있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엄마는 여기저기 알아봤고, 그 노력으로 독일에서 음악 공부를 하신 신부님을 나의 선생님으로 모셔 왔다. 음대 교수에게 레슨비를 낼 만큼 우리 집의 사정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했다. 싫었다. 엄마의 노력을 무시하고 싶었지만 뜻을 따라야만 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끔찍했다. 노래 부르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신부님들과는 달리 부드러움 따위는 없었다. 매일 혼났다.

 “이것도 몰라? 목소리가 왜 그래? 담배 피우는 거 아냐? 목소리가 그렇게 허스키해서 되겠어? 그래서는 대학도 못 가겠네.” 

 서울에서 수원에 오가는 그 시간도, 피아노 옆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도 모든 것이 지옥 같았다. 내가 천천히 쌓아 올렸던 나의 실력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큰 바위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느낌에 자다가 깨는 날이 계속되었다. 눈을 뜨면 검은 연기가 나를 뒤덮었고, 알 수 없는 검은 형체가 나의 숨통을 조이면서 괴롭혔다. 매일 아침 몸은 무겁고 뻐근했다. 분명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개운치 않았다. 새로운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는 것이 싫었다. 신부님의 얼굴, 목소리만 떠올려도 온몸에 소름 끼쳤다. 

 누군가에게 터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힘들다고 말하면 패배자가 되는 것 같았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면의 고통을 홀로 몸부림치며 견뎠고, 남몰래 속으로 울부짖었다. 

 침대에 누워있었다. 피아노 건반을 덮고 있는 빨간 천이 눈에 들어왔다.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 덮개를 손에 쥐고 목에 둘렀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꽉 조이지 못했다. 두려웠다. 그래도 이 순간을 끝내고 싶었다. 서서히 양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코로 들어가던 공기가 가슴까지 전해지지 못하는 답답함이 느껴지면서 지난밤 가위눌리듯 숨이 막혔다. 그 순간 내가 묵묵히 걸어오던 길이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을 질끈 감았고, 그 답답함을 이겨내려고 했다. 하지만 졌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 울었다. 내 인생을 쉽게 놓아버리려 했던 나 자신에게도 미안했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그 사실이 더 억울했다. 이제는 내려놓고 싶은데 그마저도 힘들었다. 지금 이 못한 일을 수능 끝나고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동생에게 나의 마음을 전했다. 

 엄마에게 밤마다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엄마는 기도하라고 했다. 기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동생을 택했다. 진짜 죽으려고 동생에게 했던 말이 아니었다. 지금 많이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수능 날 난 죽을 거라는 그 끔찍한 말을 듣고도 내 동생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것이 위로되었을까. 그 이후로 내 삶을 스스로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단지 언니의 말을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던 동생에게 미안하다. 그냥 힘들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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