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말
오늘 하루도 잘 살고 싶었다. 남들보다 더. 아니, 남들만큼이라도. 그래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상사가 지시하는 대로 살았다. 그렇게 살면 ‘성공’이라는 단어에 가까워지는 줄 알았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내 삶의 길 끝에 도착해서 웃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부모를 둔, 공부 잘하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빠른 속도로 진급하는, 돈 많은 남편을 만나 편히 사는 그들처럼.
더운 여름날이었다. 아이와 단둘이 나갔다. 아이가 원하는 슬라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후 사이렌 오더로 주문한 음료를 찾으러 갔다.
“빛나는 하루님.”
내 이름이 불렸고, 음료를 받아 빈자리에 앉았다.
“엄마가 빛나는 하루야?”
“응. 엄마가 빛나는 하루야. 엄마의 하루를 빛나게 만들려고 엄마가 지은 이름이야.”
“왜? 차라리 ‘빛나는 나’로 해. 내가 빛나야지. 그리고 엄마는 빛나고 있어.”
고작 7년밖에 살지 않은 아이가 던진 “엄마는 빛나고 있어.”라는 그 말은 내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내 심장이 두근거리게 했다.
나에게 넌 빛나는 사람이라고 말해준 사람이 딸 꿀꿀이가 처음이었다. 나 스스로 내가 빛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중간 위치에 서서 살아오는 나를, 특별히 눈에 띄게 잘하는 것이 없는 나를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런 내게 빛나고 있다는 그 말은 새로운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그랬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단지 저마다 다른 빛을 지니고 태어난 모든 이들도 함께 빛나는 세상에 서 있다 보니 그 빛이 보이지 않았을 뿐.
무엇을 해도 중간이었다. 학창 시절 시험 성적도 중간이었고, 직장 내 업무 평가도 중간이었다. 그렇게 난 그 평가 결과에 맞춰 ‘난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넌 이 정도의 그릇이야.”라고 말하는 그들의 말에 맞춰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했고, 그것에 만족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눈에는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타인을 쫓아갈 수 없는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평가한 그 숫자에 의존했다. 그 부질없는 숫자 하나에 부담감과 불안감을 느끼며 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 혹여나 실패라도 하게 될까 봐 두려워 안전한 길을 찾아 헤맸다. 모든 것이 두려워 그냥 적당히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이 ‘우리 엄마는 빛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딸에게 부끄러웠다.
남이 정해준 틀 안에서 다른 누군가와 저울질하며 살면서 자신감을 잃었고,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나의 존재감을 내가 스스로 사라지게 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던 것일까. ‘잘살고 싶다.’는 그 나의 바람 속 ‘잘’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공부해. 대학 가야지. 대학 가면 네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어. 그럼 넌 행복해질 거야.” 정말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바보같이 살았다. 그냥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아 기르고 살다 남편과 둘이 노년을 맞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 삶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부러움의 대상인 그들을 쫓는 삶. 그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나의 인생에 다른 사람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일 뿐, ‘대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내 그릇의 크기와 모양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크기가 작아도 모양이 찌그러져도 상관없다. 만들다 깨져도 괜찮다. 크기가 작으면 하나 더 만들면 되고, 너무 찌그러진 것 같으면 펴면 된다. 깨진 그릇은 다시 붙이면 된다.
나 밖에 있는 것 말고, 내 안에 있는 것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진짜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만나는 일. 그것이야말로 ‘나 참 잘 살았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수 있는 나의 삶 아닐까. 남들이 “그건 아니야.”라고 말해도 그것과 상관없이 뚜벅뚜벅 걷다 보면 내 안에 숨겨진 빛이 더 밝게 빛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아니, 조금 덜 빛나면 어때. 나에겐 원래 나만의 빛이 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