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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몰라 Jan 03. 2024

그러면 난 너희들 안 볼 거다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말

 “만약에 말이야. 부모님이 자식 한 명에게 재산을 다 주신다고 해도 너는 괜찮아?” 

 

 결혼 전, 지금의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돈거래만큼은 정확하게 했다. 엄마가 그냥 주는 돈과 빌려주는 돈은 명확히 구분했고, 빌린 돈은 때가 되면 갚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남편을 만나기 전 아버님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님은 혼자 가게를 운영하기 어려웠기에 아주버님이 본업을 그만두고 아버님을 대신하여 어머님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 형의 ‘희생’으로 어머님의 재산은 형의 것이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 알겠다고 했다. 그것은 어머님의 선택이고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 재산을 언제 큰아들이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님이 경제주도권을 갖고 계셨기에 문제 될 일이 없었다. 

 나의 솔직한 마음은 그냥 서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받지 않고 안 주는 것이 어쩌면 속 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님도 말씀하셨다. 엄마는 큰아들이랑 살면 되니까, 너희는 너희끼리 잘 살면 된다고. 그것이 엄마의 소원이라고. 어머님의 말씀이 그냥 던진 말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모른다. 난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살 생각이었다.


 이 남자와 결혼한 지 아직 1년도 안 되었을 때였다. 어머님이 이제는 사업 운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셨다. 아주버님께 가게를 넘기고 시골로 내려가 농작물을 키우며 살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님의 노후 준비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고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머님의 호출로 시댁에 방문했고 어머님과 나는 마늘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수북하게 쌓인 마늘 껍질을 까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이젠 얘네도 나이 사십이 넘었고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아.”

 “네.”

 “그래서 이 가게를 넘기고 나는 이제 쉬려고.”

 “네, 잘하셨어요.”

 “그런데 이 일로 너희 둘이 싸우거나, 형제지간에 다투면 안 된다. 나 그러면 너희들 절대 안 보고 살 거다.” 

 “어머님, 저는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건 어머님 재산이잖아요. 알아서 하세요.”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대화는 좋게 마무리되었지만 속상했다. 나의 마음은 꼬이기 시작했다. 그 건물 지분을 나눠 받지 못한 기분 나쁨이 아니었다. 어머님의 선택으로 내가 중간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면 안 된다고 들렸다. 도대체 어머님은 나란 사람을 어떻게 봤던 것일까. 돈 욕심으로 자기 아들을 조정하여 형제들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도 있는 며느리로 평가한 것일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그냥 내뱉었을지도 모르는 그 한마디는 속 깊이 자리 잡았다.

 큰아주버님께 재산을 주겠다며 재산 증여 공증 이야기가 나올 때도 혹시나 내가 저 재산에 탐낼까 싶은 마음에 어머님이 이렇게 하시는 건지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게 되었다. 그 당시 불쾌한 마음을 숨겼지만 난 상당히 불편했다. 

 시댁에 갈 때마다 그때의 상황이 떠오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어머님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자연스레 안부 전화는 뜸해졌다. 우리 부모님을 대하듯 어머님을 내 엄마처럼 생각해야겠다는 마음도 서서히 정리했다. 어머님의 칠순 때 첫 가족여행이라는 말을 듣고 종종 어머님과 함께 여기저기 다녀야지 했던 생각은 살며시 접었다. 어머님 집 누수로 공사해야 한다고 돈을 좀 보태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 남편의 말은 흘려들었다. 필요한 생필품을 사서 보낼 때면 ‘이런 것도 사줘야 해?’하면서 보냈다. 괜한 마음에 ‘진짜 저 재산 나도 탐내봐?’라는 생각도 해봤다.

 돈? 중요하다. 살려면 필요한 것이니까. 그래도 ‘돈’ 때문에 내 가족과 등 돌리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고 있었고, 부모님의 재산에는 관심도 없었다. 때론 누군가는 네 감정에 솔직해져 보라고도 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던지는 말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안 보면 그만이니까. 어머님은 달랐다. 어머님의 쓸데없는 그 한마디는 아주 달랐다. 내 마음을 헤집어 놨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서 “에이, 어머님, 저 그런 며느리 아닌 거 아시잖아요. 어머님도 참.”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웃고 털어냈다면 좀 괜찮았을까. 지금 이렇게라도 전달하면 어머님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까.


 “어머님….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그때 너무 속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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