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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몰라 Jan 19. 2024

바퀴벌레와의 동거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

  군인 관사에서 살던 우리는 아빠의 지방발령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둘 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5층 또는 1층. 엄마가 어느 집이 좋겠냐고 물었다. 1층을 택했다. 매일 계단을 오르고 내릴 자신이 없었다. 엄마의 부연 설명이 있었더라면 내 무릎을 포기하고 5층 빌라를 택했을 것이다. 

 

이사하는 날 엄마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1층이야?”

 엄마는 1층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지만, 이 집은 분명히 창문이 바닥에 붙은, 반지하였다.


 첫날부터 괜한 심통을 부렸다. 엄마는 매일 엄마 마음대로 한다며 짜증을 냈고 내가 이 집을 사는 데 보탠 것도 없으면서 왜 이런 집으로 이사 왔냐며 비난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집 안을 정리했고, 나는 그 와중에 제일 큰 방을 혼자 쓰겠다고 동생들에게 말했다. 내 말에 동생들도 이제는 각자 방을 쓰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은 각자 쓰라며 방을 내주셨고, 반지하의 새로운 집에는 엄마 아빠의 방은 없었다. 


 늦은 밤 짐 정리를 마치고 침대 위에 누웠다.


 “바스락… 바스락.”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누워서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다. 불을 켰다. 엄청나게 큰 검은 물체가 재빠르게 도망쳤다.

 “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거실에서 주무시던 엄마 아빠가 무슨 일이냐며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저기. 저기. 벌레.”

 사실 어디로 도망쳤는지 몰랐다. 그냥 아무 곳이나 가리키며 다급하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했다.

 부모님은 별일 아니라며 에프킬라를 칙칙 뿌리더니 거실로 나가셨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안 왔다. 또 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가 아닌 것 같았다. 벌레로 가득 찬 방에 갇혀 그 벌레들이 내 귀와 입 속으로 들어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밤마다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탐정 놀이가 시작되었다. 쉽지 않았다. 어두워지면 나타났다가 밝아지면 사라지는 그 벌레의 속도는 빛과 같았다. 


 주말이었다. 라면을 끓이는데 밤마다 들리던 소리가 또 시작되었다. 발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조심히 걸었고 휴지를 장갑처럼 손에 둘렀다. ‘나오기만 해봐라.’ 나왔다. 그놈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에프킬라를 끊임없이 뿌렸다. 커다랗고 검은 벌레는 서서히 힘이 빠졌다. 다가가서 살폈다. 바퀴벌레였다. 지금까지 보던 크기랑은 달랐고, 날개가 있었다.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라니. 살면서 처음 봤다.

 바퀴벌레의 생존력은 끈질기고 번식력은 왕성하다는데 이들과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매일 밤이 두려웠다. 잘 때도 3M 주황색 귀마개가 필요했고 이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고 자야만 했다. 동생들은 유난스럽다고 했지만, 부엌 옆 내 방에서는 유독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사하는 날부터 맘에 들지 않았던 이 집에 대한 애정은 더 차갑게 식었다.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바퀴벌레와 이별하기 위해 환기를 열심히 해보지만 소용없었다. 특히 장마철인 여름에는 세상에 있는 모든 바퀴벌레의 파티장이 된 것 같았다. 그 어떠한 살충제에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그들은 나와는 다르게 우리 집이 편안하고 좋았나 보다. 


 어느 날 아빠가 물었다.

 “요즘 아빠 친구들은 며느리랑 사위 얻으려고 좋은 집으로 이사한다고 하던데 너희도 우리 집이 누추해서 남자친구 안 데리고 오는 거니?”

 꼭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삐거덕거리는 욕실 문과 폭우가 쏟아질 때 저 물이 우리 집을 채우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때부터였다. 집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생겼다. 넓은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맛있는 간식을 만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며 살았다. 그 어떠한 노력도 없이 결혼하면 넓고 깨끗한 집에서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집을 사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알았다. 그 쉬운 일을 우리 부모님은 왜 못했을까 원망한 적도 있었다.

 집을 소유하고 있던 남편과 결혼해서 수월하게 신혼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몰랐다. 출산하게 되면서 나도 좀 넓은 집에서 살면 좋겠다고 말하게 되었고, 그 한마디에 남편은 새로운 집을 알아봤다. 잘살고 있던 집을 갑작스레 매매했고, 신축 아파트 30평대 깨끗하고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모든 것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쾌적한 집에서 4년간 살다가 부동산의 미친 가격으로 20평대로 옮겨야 하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알았다. 날개 달린 바퀴벌레와 살아야만 했던 그 집 또한 부모님이 어렵게 마련한 집이었다는 것을. 

 

 옆 단지 작은 평수로 이사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엄마. 엄마는 집 보는 눈이 형편없네. 난 이 집 마음에 안 들어.”


 딸의 마음을 이해한다. 넓었던 거실이 좁아졌고, 넉넉했던 본인의 공간은 줄어들었고 친구들은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 딸이 건넨 말에도 가슴에 큰 상처가 생겼는데 스무 살 넘은 큰딸이 내뱉은 말은 우리 부모님의 가슴에 얼마나 큰 비수로 꽂혔을까. 그런 마음 아픔을 내색 한 번 안 하셨던 부모님께 이제야 죄송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 딸도 마흔 살이 되면 나의 마음을 알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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