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우리 집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가 실험하는 기분이었다. 우리만 다섯, 아빠 형제 4명과 그들의 식구들, 그리고 할아버지 형제들까지…. 명절에 모이는 것은 기본이었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나의 조상들의 죽음을 기리는 날에도 모였다. 나와 동생은 명절 전날이면 책상 위에 있던 소중한 물품들을 숨기기 바빴고, 제사 준비를 위해 날 새는 엄마의 모습은 안쓰럽기보다는 처량했다. 이런 삶이 지속되면서 엄마는 지쳐갔고 이날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 집의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내가 어릴 때는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화목함은 아니었지만 평범하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사이였다. 자라난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여자 네 명이 모이면서 맏며느리와 동서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엄마,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 하면 안 돼?”
그 상황을 지켜보다 지친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 질문 하나로 엄마는 그동안의 서운함에 대해 끝없이 말했다. 엄마의 마음이 이해는 되었다. 아들 못 낳은 종갓집 맏며느리가 반갑지 않았을 테니까.
서로를 마주하면 기분 좋게 인사했던 그들이 점차 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빠의 침묵이 이해되지 않았고, 맏며느리라는 자격이 주는 부담감을 몸소 체험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정해놓은 맏며느리의 역할을 굳이 내가 맡을 필요는 없었다. 나 또한 맏딸이면서 나의 배우자는 무조건 차남이길 바랐고, 예비 시부모님의 경제적 독립 여부에 대한 조건을 마음속 어딘가에 기록해 두었다. 누군가 소개팅을 주선해 준다고 하면 가장 먼저 물었다.
“형제 관계는? 맏아들이야? 부모님은 현재 무슨 일을 하시는데?”
이런 질문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너무 중요했다.
우연이었는지 나의 간절함이 하늘 끝에 닿아 이루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 내 옆에는 삼 남매 중 막내인 남자가 있다. 회사에서 만난 그와 연애를 시작할 땐, 내 마음에 저장해 둔 기록을 들춰보며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남자친구가 되어있었다.
바람이 꽤 차가워진 겨울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퇴근하다가 한강에 들렀다. 강물에 반영된 출렁이는 빛을 바라보며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불꽃 튀는 사랑으로 시작하지는 않았잖아. 그렇다고 가벼운 만남을 하려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야. 너와 오랜 시간 함께 하려고 해. 너도 같은 생각이면 좋겠다.”
편의점 간식을 먹으며 들을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담백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문득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그 조건.
“난 맏며느릿감이 아니라 장남과는 결혼이 어려워. 우리 엄마가 맏며느리인데 너무 힘든 삶을 사셨거든. 우리 엄마는 했고 지금도 여전히 해내고 있지만 나는 못 할 것 같아.”
“음…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딸 많은 집안의 맏딸에게 장가가기도 쉽지는 않아.”
장남인지 아닌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말에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남자들 또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여자로서만 세상을 바라봤다. 괜히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렸다. 세 명의 딸 중 장녀인 내가 배우자로 부담스러운 대상임에도 나를 택했고 오랜 시간 함께 하려 한다고 말해준 이 남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하려나.
약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가 전한 말이 날 괴롭히면서 아빠가 왜 입을 다물어야 했는지 알려주었다. 맏며느리의 고충만 이해하려 애썼다. 맏사위의 입장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장남이자 맏사위였던 우리 아빠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을 일찍 여의고 동생들과 처남, 처제들까지 책임져야 했던 무게감,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끝없는 갈등. 어쩌지 못하는 마음과 미안함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초지일관 침묵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토해내지 못한 아픔이 쌓이고 쌓여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아빠와 그 옆에서 마음 아파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 흘리는 나의 눈물이 간곡히 부탁한다. 장남과 장녀, 맏사위, 맏며느리. 이런 부질없는 부담감은 인제 그만 장작과 함께 불타올라 보이지 않는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