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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죰 Jun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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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떠난, 그러나 서서히 계획한

2016. 5. 13  출국 이틀 전

 신입사원이 되었어야 마땅할 이때 나는 무작정 스웨덴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학생도 아닌, 직장인도 아닌, 그렇다고 무직이라고 하기에도 요상한 '취준생'이라는 신분으로 산지 딱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나름대로 관심있는 산업군과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며 '그래도 나정도면...'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기인해 지원을 하고 몇 차례의 면접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결국... 실패했다.


정말 죽을만큼 목숨을 걸고 인터뷰 전에 노오력을 해야했었어야 했나, 아니면 내가 그냥 안되는 인간이라서? 아니면 내가 스스로 잘하고 좋아하는 걸 정의하기도 전에 성급히 취준을 해서? 잠에 들기 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때문에 동이 틀때까지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다. 이대로 몇달을 살아야 한다면 도저히 감내할 수 없을만큼 자신감과 동기부여가 바닥을 쳤다 .


나는 분명 알고 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고 노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뭔가 기형적인 이 구조가 문제라는 걸. 그런데도 반복되는 일상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난 스스로 문제적이라고 느꼈던 그 프레임으로
나 자신을 비하하고 있었다.


 그 주 월요일부터 줄줄히 세 차례의 탈락 소식이 들렸다. 금요일 역시 지원했던 두 기업의 서류 발표가 나는 때였다. 발표가 나는 오후까지 감정적 동요를 혼자 오롯이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친언니에게 S.O.S를 청하고 잠시 속세였던 서울(!)을 떠나 학생들이 다 빠져나간 한적한 금요일 카이스트 기숙사에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결심한듯 스웨덴 스톡홀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언제? 바로 내일 모레 떠나는.




그러나 항상 제일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


1. 베스트셀러 '밀레니엄' 시리즈의 나라 '스웨덴'
개성 넘치는 '루니마라'와 007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함께한 밀레니엄 미국판. '나를 찾아줘'의 데이빗 핀처 감독 작.

3년 전 스위스에서 교환학생을 마치며 사온 유일한 소설이 '밀레니엄 - 용문신을 한 소녀' 였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제일 먼저 접한 '스웨덴산' 컨텐츠였다.


소설 속 일반적인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라고 하면 주로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주변적 인물'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여성에 대한 폭력 및 강간은 남자 주인공의 '각성의 수단'으로 묘사된다. '밀레니엄'은 그런 면에서 모두의 예상을 심각하게 뒤집는 소설이다.



밀레니엄의 주인공인 천재해커 '리즈베트'는 어딘가 삐뚤어져있고, 불편하게 하고, 시종일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첫 등장 당시 남자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를 보조하는 역할로 나오지만 결국 극 전체의 반전과 스토리를 이끄는 주인공이 결국 '리즈베트'가 된다. 스토리만으로도 오락성이 충분하거니와 탐사보도 전문기자 출신인 작가 덕에 사회고발적인 문제의식도 뛰어난 명작이다.


말도 알아듣기 어려운 아기 시절부터 여전사 세일러문에 열광하던 '나'는 밀레니엄의 리즈베트 캐릭터에 한눈에 반했다. 잠시 영어 이름을 써야하는 회사에서 일해야 했을 때마저 그녀의 이름(ㅋㅋ)을 빌려썼을 정도로 열성적인 팬이었다. 한동안 성차별적 컨텐츠에 염증 반응을 일으켜 모든 컨텐츠를 멀리하던 내가 유일하게 다시 찾아보게 한 고마운 컨텐츠 이기도 하다.


지금보니 내가 스웨덴을 접한 계기가 스웨덴의 가장 어두운 사회현실을 고발한 소설이라니 참 아이러니다. 여성혐오성 범죄, 복지의 사각지대, 섬 지역 특유의 폐쇄성, 언론에 대한 입막음까지 뭐 하나 스웨덴을 좋아보이게 쓰려고 쓴 소설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설 속 배경인 스웨덴은 화려하진 않아도 어딘가 소박한 멋스러움이 느껴졌다. 특히 무채색이 가득한, 입김을 연신 호호 불어댈 만큼 시리고 맑은 공기를 가진 나라.


2. '여성'에 관한 한 가장 진보적인 나라 '스웨덴'


 우리나라 매체에서 OECD와 관련한 기사를 보면 제목만 보아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또 OECD 꼴찌... 스웨덴, 여성이 가장 000하기 좋은 나라로 꼽혀." 여성 관련 이슈에서 항상 한국의 반대 케이스로 등장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그만큼 '여성' 혹은 '남녀평등' 이슈에 관한 한 세계에서 정말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다.


 이년 전 PR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당시 난 '기저귀 브랜드'의 콘텐츠 제작을 맡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출산 육아 트렌드에 밝아야 했으며 나중엔 그마저도 부족해지자 해외 사이트의 정보를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한국과 영어권을 막론하고, 옷부터 육아법까지 '북유럽 스타일'이 단연 인기였다.


평일 번화가에서 만난 스칸디 대디. 무척이나 작아보이는 칸켄 백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건 북유럽(특히 스웨덴)의 아빠들. 부인이 일하는 동안 육아휴직 신청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다니는 아빠들을 'Latte Papa(라떼를 들고다니는 아빠들)' 라고 부른단다.




아니,
1. 아빠가 육아휴직을 신청해서
2. 그것도 엄마없이 혼자서 애들을
3. 잘 돌보고 데리고 다닌다고??

실제로 여행을 하며 느껴보니 이 문장에 들어있는 세 가지 명제는 사실이었다.

그냥 사실도 아니고 여행자로 며칠만 가도 하루에도 수두룩 빽빽하게 보는, 기본적인 상태말이다.

또, 기혼 유자녀 여성 뿐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비롯한 모든 소수자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여행자로서 접하는 컨텐츠에까지 묻어났다.


3. 정치 투명도와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 '스웨덴'
국회의원은 나라 이름으로 자동차 한 대 못갖고, 그나마 있는 자가용마저 맘대로 주차를 못한다.
"스웨덴의 정치인들은 지하철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총선 얼마 전, KBS에서 스웨덴 정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는데, 가히 내용이 포르노에 버금갈 만큼의 판타지였다. (참고 : 중앙선관위 공식 유투브 영상)


국회의사당 앞에서 인터뷰를 하려는데 시민인지 국회의원인지 알수가 없다. 왜냐하면 국회의원들은 자전거와 지하철을 타고 평상복 차림으로 출근하니까.... 양복을 입은 경호원도, 속을 볼 수 없는 검은 세단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외 근무를 할 경우 외출비 각 항목에 대한 기록이 1크로나 단위까지 서고에 영원히 기록된다.


우리에게 국회의원은 '특권층'이며 기득권으로 인식되지만 스웨덴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여 지켜야 할 의무는 훨씬 많으면서도 월급은 일반 회사원 수준에도 못미치는 '일반 근로자'다.


이 외에도 한국에서 나고자란 나로서는 도저히 사고 회로에 있지도 않는 일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하지? 도대체 스웨덴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고 뭘 배우고 자라길래..라는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처럼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대기업(H&M, 이케아, 볼보 등)이 있고 심지어 족벌기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한때는 지금의 '탈조선' 현상처럼 다른나라(주로 미국)로 가장 이민을 많이 보내던 나라 중 하나였다. 도대체 어떤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스웨덴 국민과 사회가 있고, 정치가 정착됐을지 가장 궁금했다.


 물론 여행자로서 이 의문을 모두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 했지만, 스웨덴에 대한 나의 폭발적인 관심을 지핀 큰 동기였음은 자명하다.




스웨덴은 유난히 깜깜하고 긴 밤과 혹독한 겨울을 가진 나라다. 그만큼 빛이 소중한 나라다.

그 소중한 스웨덴의 늦봄 햇살이 가득한 지금 이때, 그리고 나의 탈한국적인 사회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큰 지금 바로 이때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주 갑작스럽게, 그렇지만 꽤 오랜 기간 품어왔던 스웨덴에 대한 열망과 궁금증을 풀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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