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나 혼자 산다' 방송에서 규현이 장 봐온 것을 깔끔하게 소분하는 모습을 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보니 가만히 보고 있던 나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규현이 혼자 우아하게 장을 보고 집에 와서 고기를 200그램씩 정리한다. 버터도 가지런하게 잘라서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멋있어 보인다. 요즘 젊은 남자들이 혼자 살면서 인테리어도 잘해놓고 정리도 깔끔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 부럽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모습을 보고 나 또한 정리한다고 따라 해 보다가 이내 포기한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2킬로를 한 끼에 먹어서 굳이 장 봐온 것을 정리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매일 장바구니 가득 사 와도 한 끼에 거의 모든 재료를 소진한다. 가끔 많이 먹으면 두 끼에 끝난다.
어떤 날은 A마트에서 장을 보고, 없는 것은 B마트에서도 장을 보다. 내 핸드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개의 마트 앱이 깔려있다. 그런데도 모든 마트 앱이 VIP다. 그만큼 마트를 자주 가고 많이 구매한다. 그런데 요즘 마트에서 장을 보면 양들이 너무 적다.
아이들이 방과 후 배고프다고 해서 간식이라도 먹일 겸 간단히 나온 밀키트라도 뜯으면 1인분이 1인분이 아닌 것 같다. 2인분을 뜯어도 한 아이가 먹기에도 양이 모자라다. 정말 포장만 요란하다.
분리수거인 날 우리 집 재활용바구니를 보면 늘 플라스틱 용기로 가득 차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볼 때마다 환경에 못할 짓을 한 거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내 탓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또 장바구니 물가는 얼마나 비싼지 딸기 한팩을 사도 나랑 남편은 감히 먹을 생각도 안 한다. 세 아이 그릇에 개수를 맞춰 나눠주면 아이들도 몇 알 먹지 못한다.
오늘은 나와 같은 아이 셋 있는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였다. 그 친구는 마침 봄맞이 옷정리를 한다고 하더라. 안 봐도 그 집 상황이 상상이 됐다. 아마도 여느 집 이삿집정도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을 테다. 요즘 애들 옷이 성인옷인 내 옷과 사이즈가 같으니 그냥 성인옷 5명분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
여름옷은 얇아서 그나마 나은데 겨울옷은 정말 옷과 싸우는 기분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그냥 내가 지는 싸움이다. 옷을 정리하다 얼마 입지 못하고 버려야 할 옷이 있으면 아까우면서도 그래도 아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하다. 오히려 버릴 옷이 없이 올해 사이즈가 아이에게 딱 맞으면 그만큼 키가 큰 게 아니라서 은근히 섭섭하고 속상하다.
친구가 내친김에 봄맞이 이불빨래까지 하다 보니 친구가 세탁기한테 미안하단다. "세탁기가 왠지 욕하고 터질 것만 같아. 그만 좀 돌려라 이것들아 이러면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서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끝도 없는 빨래를 하루종일 돌리고 돌려도 빨래는 계속 나온다. 주말이라도 하루 쉬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세 번 돌릴 때도 많다.
나는 덩달아 친구에게 밥솥도 욕하면서 터질 거 같다고 한다. 방학 때면 하도 밥을 해대서 하루종일 밥냄새에 속이 메스껍다. 배는 고픈데 입맛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이들과 방학 내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기에 유난히 지친 날에는 그냥 아이들 밥상만 차려주고 나온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 아이들과 같이 먹으면 체할 거 같기 때문이다. 밖에 나와서 나는 남편과 외식을 한다.
역시 밥은 남이 해준 밥이 꿀맛이다. 엄마인 나도 가끔은 밥에만 집중해서 식사를 하고 싶다.
우리 집 냄비는 늘 곰솥이다. 오늘은 조금만 해야지 마음먹고 우아하게 적당한 냄비를 골라도 꼭 마지막에는 곰솥으로 갈아탄다. 우아해질 수 없다. 설거지를 하다 손목이 욱신거린다. 쓸데없는 식기세척기는 밥그릇 몇 개 넣으면 용량 끝이다. 이게 어찌 5~6인 용인가..... 서양처럼 접시에만 먹어야 세척기의 기능을 다 할거 같다. 그래도 이런 가전제품이라도 없었으면 어찌할 것인가. 과거의 우리 어머님들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세탁기도 있고 밥솥도 있고 식기세척기도 있는데 불평불만 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이래저래 친구와 한참 수다를 떨며 마지막에는 꼭 한 마디씩 한다.
"누가 그렇게 많이 낳으래? 왜 그랬어?"
"그니깐 내가 미쳤지.... 너는 왜 그렇게 많이 낳았냐?"
"나? 그땐 애기라서 이뻤지~ 누굴 탓해. 내가 미쳤지"
"니 몸이나 잘 챙겨. 무리하지 말고 오늘 하루도 파이팅이다. "
이렇게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해 준다.
그래 내가 이뻐서 낳았는데 누굴 탓하랴~! 그냥 오늘 하루도 무사히 건강하게 살아낸 것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