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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든단비 goldendanbi Nov 07. 2022

감사로 새로운 일상

분노 가대화로



8년 전 일이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원장인 나는 어느 날, 하원 시간이 지나고 해가 저물어갈 무렵 원생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몹시 흥분되어 있던 어머니의 목소리에 놀라서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하고 물었다. 어머님은 다짜고짜 자기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되물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죄송하지만, 차분히 말씀해주시라고 부탁을 드렸다. 원아의 어머님은 더 큰소리로 “아이를 씻기려는데, 옷을 벗기니 엉덩이에 손자국이 나 있으며, 한쪽 엉덩이 위에 옆구리 방향으로 상처가 나 있다” 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솔직히 만 3세의 기저귀를 찬 남아의 어머님 말씀에 너무도 당황했다. 담임선생님께 확인 후 연락드린다고, 죄송하다고 전화를 끊었다. 원에서 별다른 외부활동도 없었고, 아이가 즐겁게 간식도 먹고, 놀이도 잘하고, 기분 좋게 하원을 한 상황이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아이가 하원 한지 한 시간이나 흘러서 전화를 받은 상태였으며, 더욱이 기저귀를 한 아이의 엉덩이에 손바닥 자국이 생길 만큼 그것도 얼마나 큰 충격을 가해야 기저귀 밑에 손바닥 자국이 생길지 도무지 이해도 안 되었다. 담임선생님을 불러 어머님께 받은 내용을 전달하며, 혹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었는지 여쭤보았다. 담임선생님 역시 너무도 당황하시고, 대화를 시작하려는 사이 아이의 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무작정 신고를 하시겠다며, 믿고 맡겼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냐며, 도무지 수화기 너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만큼 얼토당토않은 억지와 막말을 퍼부었다. 일단 사진을 주시고, 병원에 가자고 말씀을 드려도 도무지 통하지도 않았다. 그날, 담임선생님과 나는 저녁 늦게까지 퇴근이며, 식사도 못 하고, 정말 하루가 지옥같이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신고한다고 난리를 치시고, 병원도 거부하고, 아이도 안 보내고, 속을 태우셨다. 그날 오후 학대 신고가 되어 구청 직원 두 명, 형사 두세 명, 아동보호 전문기관 종사자까지 원 앞에 나타났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전후 사정을 묻지도 않고, 하원 시간에 하교하던 다른 부모님들마저 불안해하시며 무슨 일이냐? 고 자꾸 여쭤보셨다. 설명하기도 너무 힘든 상황에 자세한 사항은 따로 말씀드리겠다고 안심시켜 원의 아이들을 하원 시키고, 모두 원으로 들어오시게 했다. 피해자 아이와 엄마가 동행하셨다.
형사라는 사람은 나를 따로 불렀다. 요즘 사회 분위기가 아동학대로 인해 너무도 시끄러운 상황이니, 원장님께서 어머님과 아이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마무리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 형사 분은 원장님께서 사과하시면, 그 피해자 부모와 아동을 설득해서 없던 일로 해주겠다며, 그것만이 해결방법이라고 했다. 꼭 나를 범죄자 취급하면서 말이다. 나는 이런 제안이 문제가 아니라, 모두 사건을 조사하러 오신 것 아니신지 그리고 한쪽의 상황만을 말씀 듣고, 이런 식으로 단순히 합의 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반문하자, 형사는 화를 내며, 어린이집 문을 닫고 싶어서 그러시냐? 소리쳤다. 결국, 나는 일단 신고한 어머니와 아이 모두 한자리에 앉았고, 어제의 상황에 대해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했지만, 그 형사는 자꾸만 나를 아동학대자로 몰아가는 질문을 하며 난처하게 했다. 결국, 큰 배신감에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이유는 만 3세의 원아의 대답이었다. 누군가 “누가 ㅇㅇ이의 엉덩이를 때렸어?” 묻자, 아이는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 원장님이라며 지목을 하는 것 아닌가!  난 그 아이의 눈빛과 입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나는 임신 초기였으며, 그 자리에서 엉엉 목 놓아 울었다. 결국, 유산까지 되면서 하염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그 어머니는 자신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갔다. 상처와 학대 정황에 대한 사실들을 말씀드리고 검사를 받은 결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상처는 3일 전 상처라 볼 수도 없으며, 기저귀를 입고 있는 상태에서 손자국이 한 시간 이상 유지되었다면, 멍이 든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았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함께 간 어머니는 아무 표정 없이 “알았다” 한마디 대답을 하고 돌아가자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날 바로 오시지 그러셨냐며, 신경 쓰지 마시라고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주셨다. 하지만, 3일의 지옥의 시작은 그 후에 왔다. 어린이집 주변과 동네에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원아들은 타원으로 옮겨가고,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 나는 3년이 넘도록 대인기피증, 악몽에 시달리며, 꿈속에서도 그 아이의 모습에 너무도 시달리고 괴로웠다. 또한, 그 형사의 태도에 분이 풀리지 않아, 마음속은 화로 가득 차고 조금만 누가 불편한 듯 표현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그 고통은 가족에게 그대로 돌아갔다. 아이들에게도 말도 하지 않고, 소리만 지르고, 남편과도 불화가 자꾸 생겼다. 가족과 부딪히면 하루 종일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날, 책을 읽게 되었다. 감사하면 달라진다는 것이다. 늘 화가 나고, 감사는커녕, 고마움이 어떤 맘인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감사를 하면 달라진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을 팔아먹으려고 별소리를 다 써놓았구나! 몇 장 읽다가 던져놓았다.
그 후로 5년이 흐르고,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서 벗어난 작년 11월 즈음,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이렇게 살 수 없어서 시작한 공부인데, 독서를 해도 집중이 안 되던 중 유튜브를 통해 ‘책 먹는 여자’ 최서연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분 참! 말도 잘하고, 무엇을 설명해도 상대방이 너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 아니겠는가?’ 신기한 마음에 작가님이 운영하는 SNS 채널은 다 들어가 살펴보았다. 눈에 띈 것은 독서 노트와 감사 일기라는 것을 함께하자고 되어있었고,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문득, 던져놓았던 책이 떠올라서 다시 찾아 차분히 읽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쓴다는 ‘감사’가 이 책의 ‘감사’랑 다른 것이다.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내가 실천해 보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고,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바로 등록을 마치고, 감사 노트를 받았다.
한참을 펴놓고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결국, 노트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감사를 기록하라는데 도무지 감사하다는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뭘?, 왜?, 뭐가?, 누구한테’ 감사하다고 기록하라는 것인지, 그래서 나는 고민 끝에 흉내를 내었다. 남들이 쓴 것을 읽고, 따라 쓰기도 하고, 나의 상황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 한주, 한 달을 보내게 되었다. 몇백 일을 썼다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어느덧, 펜을 들고, 자연스럽게 눈을 뜨자마자, 감사 노트를 펴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면서 나의 감사가 차츰 다가왔다. 마음의 평안을 주고, 그날그날의 어려운 일들로부터 지혜를 주었다. 또 한 가지,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 매일 생각나는 ‘1일 1인’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나의 화를 조금씩 잊게 되었고, 가끔 나도 모르게 세상 억울하고, 분하고, 불행하고, 답답한 사람처럼 느껴졌던 나의 마음이 하나씩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주변을 보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들과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나의 변화에 큰 반응을 보여준 사람은 친정엄마와 남편이다. 두 사람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 이었다고 한다. 제일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살갑지 않은 딸의 눈치 보기에 바쁘셨던 우리 엄마와 집에 들어와도 쳐다보지도 대꾸도 없다가 남편의 한마디에 버럭 소리 내지르는 아내, 때론 달래도 주고, 때론 같이 소리도 질러주고, 그러면서 변하고 있는 나에게 “고맙다” 말해 준 남편이다. 아이들이 나에게 묻는다. “엄마, 화내고 있는 거 아니지?” 아들의 한 마디가 다정하다.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내가 화가 난 상태가 아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조바심 내며 불안해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 가득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 바빠? 마트 가자!” 동현이에게 편안한 투로 말을 건넨다. 내 말을 받는 아들의 마음도 편안하고, 미소 지으며, 대답하는 아들을 보는 내 마음도 따뜻하다. 화목한 가족이라는 표현을 내가 쓰게 될 줄 몰랐다. 감사함으로 받은 나의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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