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이별을 마주하곤 한다. 그 이별은 자주 안타깝다. 원하는 방식의 헤어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보니 갈무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우리가 사랑한 사람들은 그 어떠한 예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언제 이별이 오는지 말해주지 않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마무리는 전부 다 이별을 선고받은 사람의 몫이 되어버려 마음이 떠나도 머리에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하면 미련이라는 부산물이 남는다.
7년을 사귄 사람과 헤어진 친구가 있었다. 물론 헤어짐을 말하기 직전까지 어떠한 경고도 없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이별이었다, 친구에게 사랑을 추억할 시간도 상대의 떠난 마음을 살펴볼 틈도 주지 않고 본인을 떼어내게 한 거다. 이유도 모른 채 맞이한 이별에 아파했고 매일 같이 울었다. 처음엔 자신을 탓하면서 괴로워했고 시간이 지나 상대에 대한 감정은 다 식었음에도 상대를 계속 떠올렸다. 그때 알았다. 혼자만 정리하고 통보하는 이별은 너무 잔인하다는 걸.
그런데 이 노래 속 주체는 좀 다른 유형의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늘 음악을 했고 늘 혼자였으며 늘 자유를 원했던 대상은 항상 이별을 준비하게 해 준 듯하다. 자유를 향해 침몰하는 순간에도 무언가를 온전히 말해주고 있다는 것에서 어쩌면 그들만의 방식으로 건강한 이별을 마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전부터 자신은 자유를 향해 떠날 것임을 예고해왔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조차 아프게만 기억되지 않도록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억울해서 우는 일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헤어짐이 아프지 않다거나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의 잔해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마지막 작품’이라는 구절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별의 순간을 폭풍이라고 해석하고, 덩그러니 남겨진 마지막 작품을 주체로 해석할 수 있는데, 덩그러니라는 표현에서 마냥 기쁘고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쓸쓸하고 다소 허무한 상태임을 읽을 수 있다. 폭풍처럼 이별의 아픔이 몰려왔고 이후 외로움을 마주했지만, 작품이라는 단어로 연결 되면서 주체는 성장하였음을 드러낸다.
성장에서 더 나아가 올바르게 헤어짐의 시간을 보낸다면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으며 또 다른 세상을 선물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독백의 순간을 버티고야 비로소 너는 예술이 되고 또 전설이 되었네’라는 구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독백의 순간은 앞선 구절에서 덩그러니 남겨진 뒤에 이어지는 상황으로, 주체가 오롯하게 이별의 슬픔을 감내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순간이 지나고서 대상과 사랑을 추억할 수 있게 된 것을 예술로 표현함으로써 주체가 사랑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노래는 이별의 시간을 올바르게 보내서 서로의 사랑이 아름답게 추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체의 사랑 이야기가 굉장히 어른스럽게 느껴진다면 이는 마지막이 바르기 때문이다. 곧게 뻗어나간 이별이 사랑의 그림을 곱게 수성한 것이다.
나에겐 이 노래 속 의미와 연결된 사연 하나가 있다. 정확하게는 한 소년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그 친구가 이별의 여정을 걸어가던 모습 덕분에 나는 이 노래를 이해할 수 있었기에 굉장히 유의미하다. 앞에서 말한 사연과 반대로 이번에는 이별을 말한 사람이다. 소년은 자신이 하는 사랑이 버거워서 헤어지고 싶었고 그래서 상대에게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을 통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정리할 시간을 줬다. 덕분에 상대는 의미 없는 답답함과 불편한 미련을 가지지 않고 완전하게 이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랑을 예쁘게 완성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사랑이 아프게 기억된 건 결말이 날카로웠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별을 올곧게 끌고 와야 하는 건 하나의 이별을 통해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점 때문에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별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랑이 반드시 먼저 등장한 뒤 끝자락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이별을 마주했다면 마지막 온점을 찍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온점을 찍는다는 건 내가 앞서 적은 글에 대한 확신과 책임이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단계다. 그러니 제대로 된 이별을 한다는 건 내가 적어 내려간 사랑에 책임을 다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책임지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니 하나의 책임을 수행해냈다면 분명히 어른에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러나 나의 경우 어리석은 이별이 많았다. 온점을 찍기보다는 글을 지우는 걸 선택했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을 가볍고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았으니 공중분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혹은 펜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버리기도 했다. 내가 책임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고 나는 아이에 머물기를 택했다. 그건 나의 사랑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임을 알지 못했다. 사랑의 완상을 보고 싶다면 반드시 온점을 찍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그렇게 스스로 성장하기를 멈추고서야 깨달았다. 어른스러운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에 최선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별에 정성을 다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나는 이 글에서 헤어짐과 이별을 분리해서 정의하고 있다. 헤어짐은 “안녕”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별은 헤어짐의 순간부터 사랑이 추억의 궤도로 넘어가기 전까지의 과정이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에 관한 내용을 잘 정리해야만 한다. 책을 덮는 걸 사랑의 완성이라고 보는 건 조금 부족하다. 느낀 바와 배운 바를 반드시 정리해야만 한다. 소중한 기록은 보관해두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이 흩어져버리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사랑이 적힌 그 책이 적어도 개인의 역사에서는 예술이 되어 추억에 잘 안착할 수 있다.
사람들은 헤어짐을 마주하면 감정을 접어내기 급급하고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 온전히 하나의 추억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한다. 조급하게 덮어버린 사랑은 올바르게 보관되지 못하고 상해버리고 만다. “지나간 건 빨리 잊어, 그리고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건 적절하지 않다. 반드시 복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 사랑은 빨리 흘려버리는 걸 선택했고, 한 사랑은 충분한 시간을 주는 걸 선택했다. 결과는 예상처럼 후자가 더 건강했다. 똑바로 이별한 사랑은 나에게 결과적으로 행복과 평온을 줬지만, 어딘가가 어긋난 채 이별한 사랑은 나를 더 오래 아프게 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별은 반듯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랑을 시작하였고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면 상대에게 반드시 시간을 주고 설명해야 한다. 상대가 우리의 사랑을 아프게만 기억하지 않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책임을 다해 이별을 반드시 나의 힘으로 갈무리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와 그 사람이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 추억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재빠르게 사랑을 치워버리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밟아나가야만 우리는 진짜 사랑을 완성할 수 있다. 우리의 그 사랑은 고귀하기에 잘못된 이별에 상처 입지 않도록 하자. 지금 마주한 이별을 정직하게 안고 사랑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