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회피하지 않을 때 가능한 거니까

달에는 네가 없어서

by seungeunia

이제는 달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 괴로워질 것 같으면 멋대로 달을 상상한다. 뇌가 도망을 시작하는 거다. 모두가 영원히 행복한 세계가 거기에는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극복해야 할 시련이 없는 그곳에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를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는 거다. 아주 잠깐 허상을 헤매는 건 나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아주 살고 싶어지면 위기다. 어차피 그곳에 있는 건 가짜 행복뿐이니까.


현실이 필연의 고통을 주더라도 무력해지면 안 된다. 어떻게든 현실은 붙잡아 휩쓸려 가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운동센터를 등록하고 요리를 하고 매일 새벽이 오기 전 잠드는 건 그런 거다. 사실 허구의 세상에 내 시간을 전부 내어주는 건 결과적으로 무기력이다. 어차피 내가 사랑해 버린 모든 것 이곳에 있으니까. 내가 직면한 현실에서 오늘을 살아 내며 왜곡을 흘려보내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 그렇게 답을 찾아내면 된다.


문득 가짜 행복으로 가득한 내 상상에 갇혀 살기보단 차라리 진짜 아픔을 선택하고 싶어진 건 난 이 세상의 내 사랑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를 가장 많이 상처 준 건 언제나 내가 멋대로 정을 준 존재들이었지만 동시에 나의 소중한 취향을 만들어 낸 것도 정든 존재들이었다. 그러니까 내 자아엔 내가 너무 사랑해서 나를 상처 준 존재들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겁이 많은 사람이라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는데 공유된 시간들이 꼭 애정하게 만들어 버린다. 경계하며 내 마음을 외면해도 중력은 나를 반드시 그 대상으로 이끈다. 서로의 궤도가 맞물린 순간 난 속절없이 마음을 열어 버린다. 강한 척만 하는 사람이 감히 사랑을 해버리고 마음이 너무 무거워 울어 버린다. 보통은 그 지점에서 실재를 던지고 허상으로 도망을 쳤다. 더 이상 현실에서 추억이 누적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그건 결국 나를 아프게 할 테니까.


그런데 그 사람을 좋아하고 나서는 더는 못하게 되었다. 상처받을 각오를 하기로 했다. 거기서부터 가짜 행복으로 가득 찬 내 경계가 깨졌다. 내 사랑들이 어떤 흔적으로 남았는지 그게 어떻게 날 지탱하는지를 매번 깨닫게 해 주며 이 사랑은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 또다시 달을 떠올리더라도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예 도망쳐서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나는 오랫동안 이미 결정된 답이 있고 그걸 찾아가는 게 삶이 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질문하는 일 자체가 삶이라라고 말하는 어떤 사람과의 대화 이후 조금 후련해졌다. 어쩌면 정해진 게 있다는 착각에서 내 도망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가 보더라도 멋진 삶을 뚝딱 만들어 내고 싶었다. 그런 모습이 내 삶의 정답이라고 믿어 왔던 거 같다.


그래서 그게 불가능할 거 같은 상황이 오면 리셋 버튼을 누르듯 새로운 선택지를 찾고 싶어 했다. 아주 완벽하고 상처 없이 모두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세상을 달에 만들어 놓은 채 그곳에 갈 수 있는 선택지들을 찾아다녔다. 뭐든 오래 보고 있자면 갖고 싶어질 거 같은 그래서 절실해질 거 같은 기분이 든다. 그건 왠지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건 뭔가 완벽하게 뚝딱 인정받는 게 아닌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그러다 2025년의 어느 날 사랑도 삶도 여기서 이어가고 싶어졌다. 화려한 거짓을 내려두고 초라하더라도 나만의 진짜를 보여주기로 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거라면 아주 오래오래 보고 싶다. 그러다가 갖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그게 나의 진짜라면 인정하려 한다. 더 이상 허상의 멋짐과 평화는 나에게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두렵다고 도망쳐 버리기엔 이곳이 이제는 너무 좋아져 버렸다. 내가 선택해서 뛰어들었던 것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더라도 계속 걸어가 보고 싶다. 나를 사랑해 준 사람들의 희생과 지지가 미안해서 성공으로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달에 가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고마움이 이긴 모양이다.


오늘을 살아내며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하고 오늘의 사랑을 표현하며 이곳에 남기로 했다. 상처가 두려웠던 나에게 용감한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든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의 어느 날에는 분명 알게 될 거다. 그게 그동안 삶이 의미를 만들어왔던 방식이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난 아무래도 달보다는 네가 사는 지구가 좋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