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업계의 변화와 변리사님께 궁금한 것들
해찬 : 요즘은 부동산도 토큰화해서 거래하는 시대인데요, 특허도 토큰화할 수 있을지 혹은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승엽 : 실질적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일부 기업에서 아이디어 수준의 논의가 있었어요. 근데 특허라는 건 국가가 부여하는 권한이잖아요, 센트럴라이즈잖아요. 그런데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는 디센트럴라이즈잖아요.
뭔가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 권한을 탈중앙화하도록 허용할까에 대한 국가의 판단이 필요하죠. 되게 좋은 시도가 될 것 같아요. NFT가 소유를 구분하기 되게 좋으니까.
해찬 : 이번엔 특허 관련 이슈 중에서 멘토님께서 주의 깊게 보고 계신 이슈는 어떤 것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승엽 : 유럽 통합 특허요. 원래는 특허가 국가별로 관리되는데 유럽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더라고요. 유럽은 원래 유럽 특허가 있었는데,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려면 돈을 추가로 내야 하고 불편하니 이런 움직임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해찬 : 어느 업계나 딜레마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멘토님께서 특허 일을 하시면서 부딪히신 딜레마가 있으시다면 어떤 딜레마인지 궁금해요.
승엽 : 특허를 100개 출원한다고 100개가 다 등록되면 그게 특허냐는 거죠. 50개는 되고 50개는 안 돼야 말이 되는 건데, 고객들은 100개의 특허가 다 등록되길 바라죠. 이 부분을 설득하기가 어려워요. 돈을 많이 들였는데 결과가 거절이라고 하니 화는 나겠지만요.
또 내용을 덧붙일수록 등록이 잘 되거든요. 제가 일을 쉽게 하려면 비양심적으로 구성을 이것저것 덧붙여서 특허출원을 해야죠. 등록이 잘 될테니까요. 제가 양심을 지킬수록 고객을 설득하기 어려워요. 등록이 안 될 가능성을 언급해야하니까요.
그런데 이것저것 다 붙여서 특허를 받아놓으면 아무도 이걸 안 써요. 원래는 지우개 달린 연필을 특허받고 싶었는데 기존에 있던 제품이니까 지우개 달린 연필에 뚜껑을 달아놓은 제품을 특허받은거에요.
뚜껑이 그렇게 필요는 없잖아요? 무용지물인 거죠. 그냥 특허가 하나 있는 거지 권리 행사를 할 수는 없어요. 특허권 행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게 좀 어려우실테지만, 그냥 연필과 지우개 달린 연필로 생각하면 제일 좋아요.
지우개 연필로 특허를 받은 사람은 연필을 쓰는 사람들한테 권리행사를 할 수 없어요.
해찬 : 말씀을 듣다 보면 특허 출원을 하려고 찾아오시는 분들과 이야기하고, 그분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승엽 : 그걸 이해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죠. 이해를 안 하는 게 나아요. 그걸 다 이해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게 어렵기 때문에 이 일을 전문직이 하는 거죠. 그래서 전문가의 양심에 손을 얹고 제대로 써주는 게 필요해요.
해찬 : 인터뷰하면서 느끼는 게 어느 분야나 커뮤니케이션은 굉장히 중요한 능력인 것 같아요.
해찬 : 이번에는 변리사로 일하시면서 뿌듯했던 순간이 어떤 순간이신지 여쭤보고 싶어요.
승엽 : 변호사에게 짜릿한 순간이 승소라면, 변리사에겐 특허 등록이죠. 제가 의견서를 열심히 썼을 때 등록이 된 거. 거절받아 굉장히 좌절스러웠을 때도 이리저리 논리를 탐구해서 등록이 됐을 때 쾌감이 상당해요.
해찬 : 다음 질문은 아쉽거나 답답한 순간에 대한 질문이거든요. 의견서가 거절당했을 때 그런 기분이 드신다고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승엽 : 그것도 아쉬운데, 더 안타까운 건 고객이 적극적이지 않을 때에요. 거절을 여러 번 받았을 때 또 시도해야 하나 고민하는 거죠. 결국 여기서 그만할게요, 해서 결국 등록을 못하는 그런 게 안타까워요.
해찬 : 저번에 수업하셨을 때, 일반인이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잘 몰라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잖아요. 저 같은 일반인이 그런 일을 미리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승엽 : 개인적인 차원에서 노력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기관에서 창업자들을 많이 지원해주지만, 사실 누구나 지원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식재산에 관심이 생겼을 때는 이미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에요. 그래서 이 교육을 학교에서 하는 수밖에 없는데, 학교 수업 시간표를 보면 특허를 가르칠 시간이 없죠.
해찬 : 마지막 질문이에요. 특허 업계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승엽 : 아까 얘기했던 딜레마와 연결돼요. 고객이 오면, 두 가지 포인트에서 고객이 떠나고 안 떠나고가 결정이 되는데, 한 가지는 가격이고 한 가지는 등록 가능성이에요. 돈을 냈는데 특허 등록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한테 별로 맡기고 싶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특허 법률사무소들에서는 등록된다고 하고 싶겠죠. 사실 이런 지갑을 가지고 특허를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한데, 등록이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거 안 되니까 돌아가라고 하는 게 맞죠.
그런데 특허된다고 말하고서 특허의 품질과 무관하게 무조건 등록을 시키는 경우도 많이 생기더라는 거에요. 결국 먹고사는 문제로 귀결 된건데 그런 게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미국 변리사는 특허 한 건을 출원하면 천만 원 정도를 받아요. 몇 년 전 호주에서 600만 원을 받았고 미국은 최근에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 정도 할 것 같은데 한국 변리사는 그보다 일을 훨씬 잘 하면서도 우리는 150만 원입니다, 우리는 120만 원입니다 하면서 서로 가격 경쟁이 너무 심하다 보니까 전문가의 양심을 버린 선배들을 많이 봅니다.
내가 천만 원을 받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삶에 여유가 있으면 특허 등록이 안 될 건들이 왔을 때 솔직하게 안 된다고 하고 고객을 돌려보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일시 : 2022년 8월 26일
장소 : 역삼 참치여행, 엔와이즈 특허 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