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떨어져 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경준 작가는 <ONE STEP AWAY> 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이번 사진전은 이경준이라는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사진전을 보며 봉준호 감독이 마음에 새겼다는 마틴 스콜세지의 명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봉준호 감독이 그랬듯, 이경준 작가가 그랬듯, 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다면 충분히 창의적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애쓰기보다 '나다움'이 무엇일지 꾸준히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개인적이고도 창의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경준 작가는 프레임 안에서 만난 우연한 순간을 사진에 담아냈다. 작가가 마주한 우연 덕분에 일상 속 다른 관점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우연의 순간에서 모두가 나만의 관점이 담긴 특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연을 그저 우연으로 둘 수도, 우연 속에서 남들은 보지 못하는 가치 있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 우연 속에서 보물을 알아볼 수 있는 나만의 관점과 통찰력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똑같은 일상을 살면서도 어제와 다른 점을 보고, 듣고, 발견하려는, 유난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만 얻게 되는 것이다.
시 <풀꽃>에서 나태주 시인은 말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이경준 작가는 <ONE STEP AWAY>를 통해 ‘멀리서 볼 때 비로소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둘 중 무엇이 더 맞는가? 정답은 없다. 현재 나의 상황에 따라 각자에게 적절한 프레임을 취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때에 따라 삶을 대하는 거리의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고, 한 발짝 떨어져서 볼 때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나에게는 어떤 프레임이 필요한가?
이경준 작가는 직선으로 곡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점, 면, 선의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전시 초반, 건물과 거리의 사진을 보며 직선을 굉장히 잘 쓰는 작가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그 안의 곡선이 보이기 시작했고, 사진마다 품고 있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에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표정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몸짓에서, 강아지와 함께 만들던 눈사람에서.
이전의 나는 직선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했다.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하나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쭉 나아가는 삶. 한 방향으로 곧게 살아가는 사람을 멋있다 생각했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삶은 언제든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곡선 같은 것임을 깨달아가고 있다. 직선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해 그 방향을 바꾸기 어렵지만, 곡선은 언제든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곡선의 삶에서는 나아가는 방향이 꼭 앞쪽이지 않아도 된다. 옆으로 가도, 뒤로 돌아가도, 그 자리 그대로 멈추어도 괜찮다. 곡률이 커도, 작아도, 어떤 것을 그려내도 괜찮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그림을 만나게 해 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곡선의 삶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ONE STEP AWAY>가 나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였다.
이경준 작가는 사진을 찍으며 내면의 고민을 덜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사진을 통해 일상의 우연한 순간에서 영감을 발견했으며, 나다움을 느끼고 삶의 방향성을 설정해 갔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이경준 작가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주는 게 '사진'이었다면,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의 방향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는 '글'이 그런 존재다.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이것을 왜 좋아하는지 최근에 고민하며 알게 된 점이 있다. 책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로 데려가주고, 글은 내가 경험한 다른 세계를 나의 세계로 들여오도록 도와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글을 쓰며 나의 세계로 무엇을 수용하고 거절하고 싶은지, 내 세계를 어디로 확장시키고 싶은지 알아가며,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글을 쓴다. 나만의 것들을 지키고 싶어서.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고 싶어서. 나의 세계를 뚜렷하게 구축해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