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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크레용

그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59

by 어떤 생각




주황과 초록이 달아나고

파랑도 없어졌다 다음은 남색

열두 가지 색이 닳아간다

운동장 구석에 앉아

꼬챙이로 그렸다 지웠다 해도

색을 넣어 줄 수 없다

누런색 강아지도

보랏빛 나는 제비꽂도

검은점 박힌 무당벌레도

녹갈색 덮인 탱크, 비행기도

빨간색 소방차까지 점점 흐려졌다


국어책 귀퉁이 여백마다

요괴인간 벰과 베라와 베로를

바른생활책에는 꺼벙이,

땡이 얼굴은 산수책에 그려 넣는

미운 아들 미술시간은

몽당크레용

색칠이 밍밍한 도화지를 보고

나무라지 않는 선생님

가져오신 도시락 보자기를 풀어

검붉은 오동색 찬합의 뚜껑을 열면

노른자로 얼룩진 하얀색 쌀밥과

분홍색 소시지는 예뻤다


엿공장이 하숙집인 선생님 방

도시락 통을 가져가면

부엌일 하는 뚱뚱한 아주머니가

갈색 캬라멜을 주셨고

교실 벽에 붙은 내 그림은

맨 위에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눈앞에 떠오르는

내 소중한 꿈이

어릴 때 넓게 보이던 좁은 골목길

나무 담장 위에 걸쳐 있어

끝내 내릴 수 없다




크레용, 2024, Mixed media, 300mmX63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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