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열심히 밥을 하며 아이들을 사랑했다
결혼 전, 친정어머니는 나를 ‘그림’이라고 부르곤 하셨다.
내가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그림’처럼 있는다나?
친정어머니가 전문직 워킹맘이다 보니 친정에는 줄곧
상주 혹은 출퇴근하시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분들 덕분에 난, 라면 하나 내 손으로 끓여 보지 못하고
그야말로 ‘그림’으로 존재하다 결혼,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된 것.
이게 바로 내가 결혼 전 그림으로 존재하게 된 사연이라면 사연이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변화는 ‘그림’이 더 이상 ’ 그림‘일 수 없게 했다.
'요리‘라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 것.
기특하게도(?) 난 밥짓기가 처음부터 선택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된 이상 밥짓기는 나에게 ‘소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라는 인간이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문제를 도전과제로 이해,
방법을 찾아 극복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유형인지라
막막한 중에서도 결국 길을 찾아내고야 만다.
IT강국답게 요리 관련 정보는 차고 넘쳤고
여기에 열심과 의지, 꾸준함, 가족에 대한 사랑…
뭐 이런 것들이 얹어지니 요리 왕초보에게도
집밥, 가정식, 엄마표… 가 얼마든지 가능했다.
심지어 요리는 육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만만한 과제였다.
학창 시절 교과서로 배운 내용들은 기억창고에 없으니 도움이 됐을 리 없고 (가정 시간은 늘 내게 최악이었다)
오히려 친가 쪽으로 흐르는 집안병력, 건강염려증이 도움이 됐다면 됐을까?
난 진정성 있고 일관되게 아이들의 학업보다는 건강을 더 중시하며 챙겼다.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은 만큼 요리법, 영양, 식단에 대한 탐구 수준의 ‘혼자 하는 공부’가 꾸준히 이어졌고
여기에 열의까지 더해져 보기에도 좋고 꽤 먹을만한 균형잡힌 식탁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손이 빠르지 않다. 게다가 요리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다.
하지만 식탐도 적당히 있고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긴다.
내 사전에 굶는 다이어트는 없다. 식도락도 절대 포기 못한다.
밖에서 먹은 음식이 맛있었으면 집에 와서 내 나름대로 해석,
직접 만들어 가족들에게 맛을 보여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방식으로 엄마표 집밥 메뉴가 하나씩, 둘씩 늘어나게 된 것.
일반 가정식, 특별한 날을 위한 특별식은 기본, 제과 제빵, 간식, 건강식 만들기까지…
요즘은 일본가정식, 프랑스가정식 등 나라별 가정식에 관심과 애정이 간다.
요리의 매력은(기본적으로 레시피가 있지만)
재료와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형, 끝없이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
또 하나의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은 음식과 식탁에는
철학과 세계관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음식과 내가 차린 식탁은 나의 ‘생각’이고 ‘관점’이며 ‘나 자신’이기도 하다.
날마다 내 생각과 관점을 소비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이렇게 나에게 영향받으며 내 사람으로 지어져 가는 것이다.
이게 바로 잘 설계된 자녀교육의 비법이라면 비법, 노하우다.
뿐만 아니라 요리의 결과물들은 오감을 자극하고
긍정적인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내며
음식을 나누는 ‘관계’들을 끈끈하고 돈독하게 한다.
집 밖에서 달고 온 걱정과 시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재충전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홈코칭 세미나 혹은 부모교육/상담을 할 때
자녀 관련 이런저런 골치 아픈 문제들을 단숨에
해결하고 싶어 안달 난 어머님들에게
난 밥을 하라고 충언한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헛고리냐 싶겠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엄마의 따뜻한 밥’은 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는
자녀양육과 행복한 가정을 위한 요건이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자녀에게 좋은 물리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못지않게 집밥을 먹게 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지만
어이없어하거나 답답한 소리로 치부당하기 일쑤다.
공감을 보이는 분들도 실천까지 이르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아이를 특목고 혹은 원하는 대학에 보내는 손쉬운 비법은 없다.
엄마들이 기대하는 속 시원한 절대적 해법도 없다.
그러나 기본에 충실하다 보면 그 과정과 결과에서 우린 마침내 길을 찾게 된다.
심신이 건강한 아이, 집중력과 과제집착력이 고루 발달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
부모와의 소통이 원활하고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자녀로 키우고 싶다면?
드세고 사나운 아이들이 넘쳐나는 요즘, 온정있는 유순한 아이로 자라게 하려면
자녀에게 엄마의 따뜻한 밥을 먹게 하자.
대학생 딸아이가 묻는다.
”대체 장염에 걸리면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야? “
장염에 걸려본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없겠지.
미대 디자인 입시를 준비할 때 미대입시학원에서 병결 없이 입시를 마친 재원생은 거의 우리 딸이 유일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에 여기저기 아프고
몸이 부실한 친구들이 천지란다.
아들은 영재고 재학 때나 지금이나 본인이 친구들에 비해면 체력이 좋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자주 들었던 말,
“그 집 애들은 왜 안 아파?”
건강은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현재까지는 두 아이는 모두 건강하다.
우리 집 아이들 건강 비결의 1순위는 역시 집밥.
집밥은 여느 집 아이들보다 많이 먹인 것 같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해 먹이고 있으니까.
엄마의 손맛보다 인스턴트나 반조리식품, 포장음식, 배달음식, 매장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같은 음식을 먹지만 나면서부터 내 음식을 먹고 자란 두 아이와
시어머니 음식을 먹고 자랐을 남편 사이에도 차이는 있다.
음식취향도 다르고 섭취결과도 다르다.
우리 집에서 가장 병치레가 잦은 남편의 식습관을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음식에 대한 경험은 중요하다.
집밥 먹고 자란 대학원생 아들, 일산집에 다녀갈 때마다 최대 관심은
“엄마, 나 집 가면 뭐해줄 거예요?”이다.
(참고로 대전에서 자취하는 아들은 과하다 싶을 만큼 바쁜 시간을 쪼개 직접 밥을 해 먹는다)
눈만 마주치면 묻는 아들의 이 말이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믿는 한, 사랑은 서로 부담을 나누어지는 것,
난 그 말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고 맘도 놓인다.
사랑은 서로 부담을 나누어지고 자기 시간과 노력을 나눌 때 진짜가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말과 돈으로 하는 사랑은 너무 쉽지 않은가.
내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 손과 발을 움직여 가족을 섬기는 것,
행복한 가정과 자녀교육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일단 밥부터 해주고 공부도 시키고 뭐든 기대하고 바라자.
난 '엄마표 식탁'을 차리며 아이들이게 사랑을 전했다.
축하할 일이나 기념할만한 일이 있을 때
아이들이 아플 때나 상심했을 때도 난 우선적으로 밥을 했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만큼,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만큼, 아이들이게 고마운 만큼 열심히 밥을 했던 것 같다.
'엄마의 밥‘은 살아가는 힘, 위로, 즐거움, 치료약이며 사랑이다.
'엄마의 식탁‘은 엄마의 철학과 세계관이 녹아있는
아이들의 배움터이자 쉼터이고,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며 작은 우주다.
아이들은 엄마의 식탁에서 맛과 미, 전통과 문화를 소비하고
엄마의 상 차리기는 아이들을 향한 매일의 '기도'다.
어떻게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하나의 방법은 찾은 것 같다.
난 열심히 밥을 하며 아이들을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