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 더 스퀘어, 2017 >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의 새 전시
'The Square'를 앞두고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
스퀘어(square)의 사전적 의미는 정사각형.
그러나 이영화와 관련지어 생각해 본다면
그림이 그려지는 캔버스,
작품이 전시되는 미술관,
불특정 다수가 모였다 흩어지는 광장
그리고 사회구조로까지
그 의미가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크리스티안의 재치 있는 답변에서부터 흥미를 자아내며 시작된다.
"기자님의 가방이 미술관에 놓여 있다고 작품이 될 수 있나요?"
작품이 되고 안되고는 누구에 의해 결정되는가?
작품의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하는 특수 그룹의 사람들...
바로 이들이 작품의 가치와 가격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이들이 정한 프레임 안에 갇혀 이들의 예상 범위 내에서만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이들이 작품의 가치를 정하는 판단의 기준이 투명하긴 할까, 혹은 믿을만한 것인가?
이들끼리의 합의로 정해진 가치와 프레임에 관객들은 저항할 수 있을까?
저항이 가능하다면 저항의 방향성과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은 단지 미술관 혹은 갤러리 전시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이제 광장으로 나가보자. 이 영화에는 유독 광장 씬이 많이 나온다.
"스퀘어는 안전지대입니다.
여기 스퀘어에 누군가가 서서 도움을 청하면 도와줘야 합니다.
횡단보도가 사회적 계약인 것처럼 스퀘어 역시 계약입니다"
사회나 국가의 탄생은 계약에서 시작된다. 영화에서 스퀘어는 계급과 무관한 연대를 약속한다.
암묵적 계약에 따라 스퀘어에서는 누구나 필요한 도움과 신뢰 혹은 배려를 받을 수 있다.
또 스퀘어 안에서는 각자에게 도울 의무가 주어진다.
이것은 하나의 약속으로 관계미학을 기본으로 한다.
스퀘어 내에서는 '관계 맺음' 즉 '관계'를 근거로 쌍방 간 도울 의무를 나누어지게 되는 것.
그리고 관계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구조화된 스퀘어 안에서의 삶은 실제 어떤 모습일까?
스퀘어는 계약이 잘 지켜지는 안전지대로서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스퀘어 안에 울려 퍼지는 '도와주세요!'
스퀘어 안의 진실은...
자본주의가 견고해질수록 심화되는 계급 간 격차.
미술관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에서 사회참여적인 전시
즉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의 메시지를 담은 전시를 계획한다.
기획 전시에 출품하는 작가의 선언은 다음과 같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성역으로
이 안에선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전시는 오픈도 전에 위기를 맞게 되는데...
-전시 홍보 영상 유포 : 광장에 버려진 가상의 금발 여아가 어떤 도움이나 구조 없이 10초 뒤
폭발하는 영상이 유튜브에 뿌려지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모금행사장 퍼포먼스 : 스퀘어(모금행사장)에 갇힌 부유한 사람들은 퍼포먼스를 실행하는 예술인에 의해
누구나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 상황에 직면한다. 일단 공격의 대상이 되면 그야말로 도움이 절실하게 되는데...
스퀘어 안에서 울려 퍼지는 도와주세요!
스퀘어 안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크리스티안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사회에 구조화 돼 있는 계층을 솔직히 인정하게 되고
하위 계층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두려움과 함께 그들에 대한 몰이해를 생성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사회 계층의 문제는 분배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를 표방하는 전시를 계획했던 것인데 일은 마구잡이로 꼬이고 만다.
스퀘어 안에 엄연히 공존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책임 : 표현의 자유, 직업적 역할 : 개인의 견해라는 딜레마에 빠져 좌초되고 만다.
미술관 기획 전시는 철저히 큐레이팅된 계획 전시로 관객은 자유로운 관람을 기대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관 혹은 작가의 의도와 통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자유가 주어질 뿐이다.
관객에게는 큐레이터에 의해 픽업되고 구성된 전시장(스퀘어 안)을 전시 의도에 맞게,
잘 짜인 각본대로 이동하며 감상할 자유가 주어진다.
사정이 이러한데 미술관에서 관객의 권리는 과연 어느 만큼 지켜질 수 있을까?
다시 스퀘어로 돌아가 보자.
오늘의 스퀘어는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스퀘어를 유지/작동시키는 계약은 상위 지배 권력(기득권)의 프레임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의 주체는 사회적 약자가 아닌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는 지배권력이 만들고 구조화 한 틀 안에 갇힌 타자들일 뿐...
스퀘어에 약속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나 도움은, 배려나 도움의 주체가 되는
힘과 부를 가진 이들의 그날그날의 상황과 변덕스런 기분에 따라 지켜지거나 무시된다.
따라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나누어지는 신뢰와 배려의 성역 스퀘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구조였는지도 모르겠다.
*** 70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