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피커인가? 리스너인가? 아니면 둘 다 인가? 자세히 생각해보면 스피커에 더 가까웠다. 남의 말을 듣는 거 보다는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싶어 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영향을 받으니, 내 발언 능력치가 올라가는 거 같아 더 신이 났다. 대화에 있어서 내 역할이 주목받으니 마음속의 춤꾼이 더 신나게 자기 한을 푸는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 한 살씩 먹게 되면서 이 생각이 맞는지 나에게 질문하게 된다. 과연 스피커로써 “그만큼 그 자리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가?”라고 물으면 그것보다 남의 말을 더 중시 듣는 게 나에게 이득이었다. 내가 들은 만큼의 지식과 대화 속의 감정도 배우게 된다. “스피커, 리스너. 그 두 개의 차이가 무엇일까? “ 고민에 빠지게 되면 스피커는 '내가 이 대화에서 말하고 싶어. 그로 상대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니 기분이 좋네.'라는 사람, 리스너는 '말을 들어주면서 감정 고민들을 공감해서 따뜻하게 안아줄게.'라는 사람이다. 리스너가 상대방에게 오히려 더 좋은 방향으로 해석된다. 내가 갈 방향의 조립이 완성되어간다.
회사에서 한 상담가와 '마음 산책'이라고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때에는 내가 스피커로써 나의 이야기를 한 바탕 다 풀고 왔다. 그때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다 푸는 느낌이었다. 그때 무엇이 힘들었는지 못 끄집어낸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다. 그 상담가는 리스너로서 온전히 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는지 고민했다. 나의 상담 스타일은 심리학 지식을 갈구하는 스타일이었다. 상담에서 자주 쓰는 단어를 써가면서 “이런 마음일 때 이런 용어를 사용하면 좋아요.”라는 지식으로 나를 상담했다. 그 단어들에 호기심에 빠져 버렸다. 단어 하나 알려줄 때마다 너무 궁금해 또 알려 달라는 눈빛으로 그 상담가를 바라보았다. 사실 상담하고 있는 도중에는 몰랐지만, 마지막 회차에 상담가가 알려 주었다. 그 방향으로 상담을 했으니 좋은 효과가 나타날 거라고 했다. 자신을 낮추며 “이건 진규 씨가 잘한 거 에요.”라고 전달했다. 마음 산책을 하고 싶어 하는 동료한테 그 상담가를 추천했다. 내가 왜 좋아했는지, 공감을 많이 해주고 다독였다는지 말이다. 그 친구는 마음산책을 하였을 때 "선배님 만큼은 좋지는 않았다."라고 했다. 그냥 오늘 뭐하고 돌아갔는지 잘 모르겠다고 전달받았다. 상담은 나한테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용 횟수 30회를 다 써가면서 상담가와 매번 심리 상담을 하여 내면이 점점 강해지는 느낌을 겪었다.
내 감정 뿌리를 들어주는 상대방이 주위에 많을수록 내면이 더 강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휴직기간 동안 현요아의 리츄얼(타이핑 필사 & 글쓰기) 통해서 내가 다른 친구의 글에 댓글을 달게 되거나 나의 글에 댓글을 달리는 걸 보면서 행복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방이 있고 나의 감정들이 잘못 전달되고 있지는 않는구나'라는 마음을 얻고 갔다. 이런 반응들이 많아지면 ‘내가 더욱 건강하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사람까지 되고 싶었다. 물론 문법들은 많이 틀렸다. 내가 생각나는 속도로 쓰다 보니 틀리는 부분이 많다. 나는 요즘에 최소한의 대화 표현으로 스피커보다는 리스너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중이다. 대화를 할 때는 무릎 반사처럼 떠오르는 일방성보다는 진심으로 다가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화를 함으로써 내가 말하고 싶은 감정들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상대가 그 감정을 잘 전달받는 사람으로 남기 바라면서 말이다. 공감해주기란 상대방의 고통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화자가 그만큼 마음을 풀 수 있는 거다. 나 자신을 칭찬하면 안 되지만 친구의 감정을 알아가고 이해해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좋은 리스너로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