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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어리 May 18. 2024

빈 잠자리

2024년 2월의 일기 

누군가와 함께 자는 습관을 들이면 혼자 자던 때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 평생 혼자 자는데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자가 없으면 잠에 못 들게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


내 경우는 그게 똥꼬였다. 똥꼬는 이제 만 5살을 앞두고 있는 앙칼진 말티즈다. 태어난 지 4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 집에 왔다. 함께 지낸 5년 동안 똥꼬는 낮에는 빨빨거리며 뛰어다니는 강아지였다가, 잠자는 시간에는 온기를 나누어 주는 털난로가 되기도 하고, 잠이 안 오는 밤에는 쓰다듬다 보면 스르르 잠이 드는 애착 인형이 되기도 했다. 또 때로는 나의 든든한 경보벨이기도 했다.


똥꼬가 2살이 되던 해 둘이 전주로 여행을 갔다. 강아지와 단둘이 여행이라니. 초보 견주에게는 로망 같은 일이다. 아직 밤에는 조금 쌀쌀하던 4월 초, 캐리어에 강아지 용품들을 잔뜩 챙기고 강아지 가방까지 들쳐 안고 낑낑거리며 기차를 달려 전주의 어느 한옥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강아지를 데려갈 수 있는 저렴한 숙소라는 이유로 그곳을 골랐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작은 마당과 그 위로 보이는 맑은 하늘. 조그마한 방에는 도톰한 이불이 정갈하게 개어져 있었다.


유일한 단점이 있었다면 잠금장치가 매우 허술하다는 점이었다.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대문이 있었지만 이미 게스트하우스 안에 들어온 옆방 손님이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너무 쉽게 톡 열 수 있는 자물쇠가 유일한 잠금장치였다. 자물쇠가 걸려있긴 하나 자물쇠보다 문고리가 커서 자물쇠를 조금만 비틀면 문을 열 수 있었다.


심지어 나는 한번 잠들면 태풍이 치고 지진이 나도 모르는 사람이다. 동시에 세상 모든 가능성을 열고 살아가는 파워 N이기도 하다. 혼자 잤다면 분명 온갖 나쁜 가능성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잠 못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옆에는 온갖 낯선 소리와 모든 낯선 사람들에게 캉캉캉 짖어대는 경계심 가득한 강아지가 있었다. 혹여 누군가 문고리를 건들기라도 하면 요란하게 짖어대며 내쫓을 경보벨계의 수재였다. 다행히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이 우리뿐이었던지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평소에 조용히 좀 하라며 구박했던 게 미안할 만큼 똥꼬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집에서 잘 때도 괜히 무서운 밤에는 엄마랑 잘 자고 있는 똥꼬를 간식으로 꼬셔서 내 방에서 재웠다. 지금은 본가에서 나와 친구와 지내고 있다. 친구가 집에 있는 날에는 괜찮은데 가끔 혼자 자는 밤에는 아직도 좀 무섭다. 똥꼬랑 함께 지내는 동안 제대로 습관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요즘은 그 빈자리를 문단속을 두 번 세 번 하고 방문까지 잠그고 자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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