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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28. 2022

아름다운 싸움



 “살아있다”


 역시 오늘 아침도 우리 3학년 교실은 체험 삶의 현장이다. 변화무쌍하다. 시끄러움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그 어떤 말보다 몇 배 이상으로 생생하다. 아이들의 컨디션은 최상이다. 건강한 에너지가 철철 넘친다.      


 정신이 나갈 것처럼 시끄러운 것은 참을만하다. 난감한 일은 분쟁이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개인과 집단 간 분쟁은 장소,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일 년에 서 너 건은 이웃 국경(다른 학급)과의 분쟁이다. 그러면 일이 커진다. 보통 하루에 반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4~5건이다.            


 어린이들의 분쟁을 조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야말로 터무니없고 소소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분쟁의 원인이다. 승자와 패자를 가릴 수 없이 둘 다 똑같이 잘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박박 우겨대기 일쑤다. 상대방이 무조건 잘못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논거를 들이댄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상대방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억울함과 슬픔이 뒤섞인 얼굴 표정을 짓고 큰 소리로 우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가슴을 쿵쿵 내려치면 더 억울해 보이면서 친구들의 분별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한 단계 더 효과적인 방법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불쌍한 척 책상에 엎드려 작은 소리로 훌쩍거리는 것이다. 이따금 들썩이는 어깨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이 애가 더 억울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2교시 쉬는 시간에 오늘의 첫 분쟁이 발생했다. 책상 위에 있던 민희의 분홍색 필통을 순희가 지나가다가 떨어뜨린 것이다. 순희는 민희에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했는데 민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희는 생일 선물로 받은 필통을 미간을 찡그리고 매의 눈으로 꼼꼼하게 살핀다. 오른손으로 필통 전체를 만지고 더듬으며 입으로는 작은 소리로 욕을 한다. 용케도 순희가 이 욕을 듣고 따진다. 민희는 혼잣말을 한 것이라고 박박 우긴다. 순희도 물러서지 않고 자기에게 욕하는 소리를 다 들었다고 우겨댄다.    

 “내가 너를 쳐다보며 욕을 했니?”

 “안 쳐다봤어도 나한테 욕한 거 맞잖아.”

 

 싸움은 며칠간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싸움 구경에 집중하던 친구들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싸움의 끝을 보지 못하고 운동장으로 나가버렸다. 중간놀이 시간 30분이 허망하게 지나버렸다. 다행히 필통은 푹신한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망가진 데는 전혀 없었다. 민희의 얼굴에 안도와 미안함이 섞인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서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3, 4교시가 지나갔다. 


 점심시간이다. 민희와 순희가 손을 잡고 급식실로 향한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민희가 순희에게 사과를 한 눈치가 살짝 보였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온다.

 “참 나원” 

 오늘의 분쟁은 다행히도 나의 중재 역할 없이 자연적으로 일단락되었다. 다행이다. 만약에 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면 상담사 역할까지 맡아 둘 중에 하나가 입었을 마음의 상처까지 보듬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쟁 중 가장 심각한 분쟁이 있다. 개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다. 진희가 책상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있다. 

 “진희야 너 아침에 무슨 일 있었니?”

 “······.”

 “속상한 일이 있었구나. 선생님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진희의 마음속에 심각한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1교시가 끝날 때까지도 진희는 그 상태로 있다. 그럴 때에는 자연 치유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가 터득한 방법이다.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교실은 조용하다. 진희가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한다. 

 “선생님, 어젯밤에 우리 엄마 아빠가 엄청 심하게 싸웠어요. 아빠는 술 먹고 소리 지르고 엄마는 울고 오빠와 나는 작은 방에서 떨고 있었어요. 그릇 깨지는 소리도 났어요.”     

 ‘아뿔싸, 이 일을 어찌 한담. 나의 상담 실력으론 어림도 없는데.’

 굉장히 큰 건이다. 비밀 보장의 원칙도 지켜야 하기에 부모님과 상담도 못한다. 진희를 쭉 지켜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우리 아버지도 내가 초등학교 때 부부싸움하고 소 끌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누군가의 마음이 상처받고 아프게 된다면 외부의 충고나 위로도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자기 스스로 정리하고 결론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한 상담할 때에는 비밀 보장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초등학생들과의 비밀은 쉽게 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 묻은 손을 털어내듯이 자신의 비밀을 제 스스로 털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마음속에 무언가를 오래 담아 두지를 못한다. 비밀은 비밀이 아닌 게 되어버리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심각한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 어쩌면 처음부터 비밀을 지켜야 할 만큼 심각한 일들이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른들이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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