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목걸이는 한 알 한 알의 진주가 모여서 영롱한 빛을 발한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하나 하나가 진주였다. 어느 것 하나도 빛나지 않는 것은 없었다.
4학년 진아는 공부를 참 잘하는 아이다. 진아는 못하는 것이 없다. 그림이면 그림 춤이면 춤 만능이다. 유월이 되면 6.25기념 웅변대회가 열리는데 진아는 도대회에까지 참가해서 큰 상을 탔다.
“진아야 오늘 큰 상을 타서 엄마가 무척 좋아하시겠네?”
“우리 엄마는 전교과 성적 평균 98점을 맞아도 잘했다는 말을 하지 않으세요. 100점이 아니니까요.”
1학년 진태는 머리도 좋고 말도 조리있게 잘한다. 진태는 말꼬리 잡기와 말대꾸를 잘하기로 선수다. 친구들 중에서 말로써 진태를 이긴 친구는 없다. 선생님이 열마디 하면 열마디로 대꾸를 한다. 진태의 사전에는'예'
라는 단어가 없나보다. 점심 시간에 나랑 40분 동안 말씨름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지금 여덟살짜리하고 뭐 하자는 거지?”
한심한 생각이 들면서 진이 쭉 빠졌다.
1학년 수연이 부모님이 화덕 피자 가게를 차렸다. 수연이 엄마의 말에 의하면 통닭 가게, 분식집에 이어 세 번째 가게라고 했다. 저녁 때가 되면 학원갔다가 돌아온 수연이가 가게에 들어오면서 반드시 묻는 말이 있다고 했다.
"엄마 오늘 매상은 좀 괜찮아요?"
3학년 준식이는 수학을 비롯해 모든 전과목 학습 성적이 좋다. 준식이는 싸움꾼이다. 말다툼 시작과 동시에 얼굴이 일그러지며 발갛게 달아오른다. 친구들과의 싸움에서는 반드시 이기려고 하다보니 폭력을 쓴다. 선생님이 잔소리를 하면 책상을 발로 냅다 찬다. 책상이 교실 바닥에 나뒹굴며 천둥 같은 소리를 낸다. ‘진짜 무섭다’
4학년 박설매는 얼굴도 눈 속의 매화처럼 예쁘다. 설매는 잘 웃지 않는다. 설매는 선생님께 친구들을 잘 일러바친다. 욕도 잘 한다. 선생님이 설매를 교탁 앞으로 부른다.
“설매야 이거 수학 문제 답이 많이 틀렸다. 다시 할래?”
“×× 지가하지.”
내 손에 들린 수학공책을 휙 낚아채간다.
“······.”
1학년 친구들이 긴줄넘기를 한다.
“하나- 둘- 셋- 넷- ”
진영이가 들어가서 네 번 뛰고 나간다. 서희가 줄 안으로 들어갈 순간을 가늠하기 위해 숫자를 센다. 보통 아이들은 네 번 정도 세는데 서희는 열까지 센다. 안간힘을 써서 겨우 줄 안으로 들어간 서희가 두 번도 뛰지 못하고 철퍼덕 넘어진다. 신고 있던 운동화가 좀 크다 보니 줄에 걸렸다.
“에이 꼬시다.”
서희가 넘어지는 것과 동시에 차례를 기다리던 나연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은하는 평소에 가시 돋친 말을 잘 한다.
3학년 1반 총학생수는 한 명이다. 학생 이름은 김인아다. 나는 인하 담임이다. 인아의 고민은 엄마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다. 인하가 무표정일 때가 많고 웃는 일은 거의 없다.
“이거 정말 맛있다. 너도 맛있지?”
“인아야, 이 꽃 정말 예쁘다. 그치?”
인아는 대부분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나는 인하의 미소를 보기 위해 날마다 노력한다.
철이는 3학년인데도 글을 매끄럽게 읽지 못하고 발음이 부정확하다. 친구들과 말다툼 하는 일도 없고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주며 자신의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얼굴에 늘 웃음을 머금고 있다. 철이를 쳐다보는 엄마도 늘 웃음을 띠고 있다. 철이 아빠가 술냄새를 풍기며 오토바이에서 내릴 때 철이는 엄마 뒤에 숨는다. 철이 엄마와 철이, 철이 누나는 아빠를 두려워한다.
1학년 태웅이는 늘 조용하지만 공부 시간에 집중을 못한다. 연필로 지우개에 구멍을 뚫기도 하고 싫증이 나면 반을 뚝 자르고 또 반의 반으로 잘게 자른다. 그 다음 손바닥으로 책상 위를 흝어서 지우개 조각들을 바닥에 버린다.마지막으로 남은 부스러기를 입으로 한 번 '후' 불어 공중으로 날린다. 손바닥을 탈탈 털면 작업이 끝난다. 태웅이는 나중에 정교한 작업을 하는 일을 하면 제격이지 싶다.
1학년 준태는 교실보다 밖을 더 좋아한다. 내가 칠판에 글씨를 쓰고 뒤돌아보면 준태는 이미 제자리에 없다. 연못 옆 3학년 교실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온다.
“선생님 준태가 저희 교실 앞에 앉아 있어요. 나무 막대기로 연못을 계속 휘저으며 혼자 놀고 있네요.”
하루에도 두 세 번씩 나는 준태를 찾아 연못으로 간다. 준태가 해양 전문가가 되려나?
3학년 진수의 커다란 눈이 포도처럼 새까맣다. 늘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이 매력적인 진수는 친구들의 가방 뒤지기를 좋아한다. 친구들이 점심 먹으러 간 사이 가방을 뒤진다. 학용품이나 소소한 물건이 없어졌다는 신고가 매일 들어온다. 가방 뒤지는 현장을 내가 목격했고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에 진수는 단호하게 잡아 뗐다.
“선생님 저는 가방을 뒤지지 않았어요. 그냥 살펴본 거예요.”
“······.”
선중이는 3학년이다. 선중이가 아침부터 책상에 엎드려 있다. 보통 2교시까지는 잠을 자고 3,4교시까지는 앉아서 졸다 자다 한다. 선중이는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선중이가 컴퓨터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는 대견해 하신다. 컴퓨터로 하는 것은 모두 공부라고 생각하시는 할머니가 초저녁부터 잠이 들면 선중이는 맘 놓고 게임을 즐긴다. 선중이 눈은 점심밥 먹을 때만 초롱초롱하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눈이 커다란 순태는 4학년이다. 아빠는 보통 사람과 좀 다른 괴짜다. 아빠와 둘이 살고 있는 순태는 아빠가 잘 챙겨주지 않아 옷차림이 꾀죄죄하고 땟국물이 질질 흐른다. 여름에도 털쉐타를 입기도 하고 겨울에 반팔옷을 입을 때도 있다. 순태는 한글은 더듬더듬 읽지만 영어 알파뱃은 E까지만 읽고 쓴다. 순태가 학예회 발표회날 큰 박수를 받았다. 리코더 합주 발표를 할 때 음정 박자 다 무시하는 순태에게 선생님이 특명을 내렸다.
“순태야 너는 손가락 움직이는 시늉만 해라. 소리는 절대로 내면 안 돼. 알겠지.”
발표가 끝나고 할머니들이 난리가 났다.
“아니 자가 누구여? 왜 저렇게 피리를 잘 불어?”
순태가 다른 친구들보다 손가락을 몇 배나 더 빠르고 현란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할머니들 눈에는 순태가 단연 돋보였을 것이다.
상우는 1학년이다. 글자는 가, 나, 다까지만 읽을 수 있다. 오월 어버이 날 때 친구들이 삐딱 글씨로 부모님께 편지를 쓴다. 친구들이 쓰는 편지를 가만히 들여다 본 상우가 한 마디 한다. “나도 저렇게 쓰고 싶은데.”
끝말 이어가기를 한다. 건우는 끝말 이어가기 놀이만 하면 신이 난다.
“김치- 치약- 약국- 국수- 수박- 박수- 수건- 건디기(건더기)”
다음은 상우 차례다. 상우가 골똘히 생각한 끝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크게 외친다.
“기웅기(경운기)”
제 자신이 대견스러웠는지 상우가 환하게 웃는다. 기웅기를 생각해내는데 걸린 10초 정도를 기다려준 친구들도 빵 터졌다.
주말이다. 1학년 소윤이가 가방을 메고 학교버스를 타기 위해 제일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가며 90도로 나에게 인사를 한다.“
선생님, 주말 동안 명복을 빕니다.”
나는 웃으며 큰소리로 대답한다.
“소윤아, 주말 동안 행복을 빈다.”
'아유 저런 깜찍이'
내 마음 속의 진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