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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영 Jan 12. 2023

'화'를 낸다는 것

 

  얼마 전에 아파트 관리실과 다툼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우리 집 거실 화장실 문손잡이가 고장 난 것에서 시작했다. 나는 관리실에 전화해서 봐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관리실 직원이 연락도 없이' 딩동'하고 들이닥쳤다. 그는 나에게 철물점에 가서 손잡이를 구입해서 교체하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철물점에서 안 되면 그때 다시 관리실로 연락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대로 두면 안에서 잠겨 사람이 갇힐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덜컹 겁이 났다. 거실 화장실은 공부방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사용했기에 아이가 갇히는 상황이 연출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내가 약속이 있었고 관리실에서는 오후에 정해진 작업이 있어 안 된다고 했다. 어떡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직원은 알아서 하라며 가려고 했다. 나는 가려는 직원을 붙잡아 세웠다. "관리실은 왜 항상 이런 식이냐, 아이가 갇힐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서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나, 전에도 이러저러하더라."고 하니 직원은 으레 까다로운 고객 상대하듯 "예~예~ 죄송합니다."라고 빈정거리는 투로 얘기했다. 나의 감정이 문고리에 대한 걱정에서 직원에 대한 화로 바뀌었다. "그건 사과가 아니다. 그런 태도가 뭐냐"고 했더니 "알아서 하세요."하고는 가버렸다.    

  

  나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이전 아파트에 비해 유난히 빡빡하게 구는 관리실이 입주민을 상대로 갑질하는 듯한 인상을 받아온 터라 이번엔 그냥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음먹고 관리실을 방문해 소장을 만나 얘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관리소장은 개인 화장실 수리는 관리실의 업무가 아닌데 우리 직원의 태도가 뭐가 잘못되었냐로 일관했다. 잘못한 거 없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정의의 사도처럼 결연하게 갔다가 패잔병이 되어 돌아왔다.   

   

  한동안 속상하고 화나는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후 무엇 때문에 분쟁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입주 이후로 교체하지 않고 사용해 온 시설물이 고장 나는 경우는 당연히 관리실과 상관있는 일인 줄 알았기에 관리실이 직무유기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직원이 보여준 성의 없는 태도도 한 몫 했다. 관리실 측의 입장은 개인 사정을 당연한 듯 관리실에 요구하고 그것이 수렴되지 않으면 불만을 터뜨리는 입주민이 잘못되었다는 거였다. 관리실 업무냐 개인이 처리할 일이냐에 대해 이해도가 달라 생겨난 문제였다. 차분히 돌이켜 보니 관리실 측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자기 집 기물 수리 부분까지 관리실에서 해주어야 할 건 아니다.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사과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잘 모르거나 섣부른 판단으로 오해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상황에서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으며 심지어 직접적으로 화를 표출했어야 했을까 라는 것이다. 화가 난 이유는 분명했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화장실에 갇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었고, 나에게는 긴박한 상황인데 그것을 대하는 직원의 태도가 (당시에는)무책임하고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애써 불만을 표시한 후에는 무시당하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직원의 무성의한 태도가 못마땅했을지라도 그렇게 까지 화를 낼 건 아니었다. 나는 왜 그토록 화를 표출해야만 했을까. 상대가 관리실이 아니라 친구나 지인이었다면, 나아가 학생 학부모였더라도 내가 과연 같은 행동을 했었을까. 존중과 배려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화를 내었을까. 내가 그처럼 감정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나 역시 상대에 대한 존중보다 만만한 마음, '갑질'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괴로웠다. 꼭꼭 숨겨두었던 내면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느낌이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과 지혜롭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둘 다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오래전에 법륜 스님께서 ‘화’를 내는 것은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가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화’란 본래 감정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그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되었다. 화가 난다는 것은 나의 욕구와 상반되는 상황을 내가 통제하거나 바꿀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불만이 격한 신체반응을 통해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욕구에 관한 문제로 오히려 의식의 영역에 가깝다. 나는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내 안에 화가 잠재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촉발되었을 뿐 나 스스로 억누르고 있는 욕구들이 있었다.      


  화가 일어나는 것이 자기 내면의 상태를 반영하는 거라면 화를 낸다는 것은 내가 세상과 마주하는 지점에 관한 문제이다. 나와 타자, 나를 둘러싼 세상을 대하는 나의 시선, 관점, 애정, 평화로움의 정도에 따라 내면의 화를 필터링 없이 분출할 수 있고, 자정작용을 거친 뒤 사그라뜨릴 수도 있고, 화가 난 자신을 알아채고 화의 원인을 찾아 감정을 덜어낸 후 이성적인 대화로 사건을 마무리 할 수도 있다. 필터링 없이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나의 시선에 교만함이 있다는 거다. 상대에 따라 다른 형태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 역시 내 안에 내재해 있는 교만함이다. 또한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석음도 함께 있다. 상대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이번 사건에서처럼 커다란 동요 없이 한결같은 태도로 타인과 마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욕구를 돌보면서 나와 세상의 연결고리 사이에 놓인 벽을 없애야 한다. 연말연시에 일상의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지금 내가 가진 욕구들과 그것들을 해결해 나갈 삶의 비전을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여정, 나와 세계를 더 넓게 연결해 가는 과정인 삶의 과정에서 크게 한 번 호흡하며 다시 나아가 본다.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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