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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닝커리어 Sep 26. 2024

“섹스(sex)를 좋아하세요?”

고등학교 위클래스에서 4년, 현재는 위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 모든 사례는 각색하고 재구성하였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섹스(sex)를 좋아하세요?”     


위 질문은 작년에 참여했던 ‘성상담의 이해와 실제’라는 워크숍에서 강의를 맡았던 교수님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 질문입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성교육에서도 생식기 그림이나 피임만 강조하지 말고(물론 피임도 중요합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요즘은 딥페이크 영상으로 워낙 시끄럽다 보니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문화를 형성하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위 질문에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좋아한다고 말하려니 좀 거시기하고, 그냥 멋쩍은 웃음으로 넘어가시렵니까?     


“본인에게 섹스가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 볼까요?” 


이렇게 성에 대한 얘기를 공개적이고 진지하게 할 수 있어야 몰래몰래 하지 않는다며 학교에서 사회적, 관계적인 맥락에서 적절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성적 욕구는 사랑하는 사람과 융합되고 하나가 되고자 하는 친밀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저는 이 워크숍에서 제가 가진 성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여러분은 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세요? 

성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편이세요?

요즘 청소년들은 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초중등을 막론하고 아이들이 패드립(패륜+드립)이나 섹드립(성적인 드립)을 엄청 많이 합니다. 들어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충격 그 자체이지요. 글로 남기기 민망할 정도로 너무 험하고 수위가 쎄서, 저들이 머무르는 세상에서는 어떻게 저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떠드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됩니다.      


또래 관계에 서툴고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는 고등학교 2학년 영진이는 음란물 동영상을 자주 봅니다. 영상을 보며 자위를 할 때도 있고, 하도 많이 봐서 순서대로(?) 외울 지경입니다. 음란물을 많이 보게 된 것이 문제가 된 것은 어느 날 학교 여선생님을 몰래 촬영하다가 들켜 징계를 받게 되면서였습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혹시 음란물을 보는지 질문을 했더니 이미 오래전부터 봐왔으며 자신도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건전한 성 관념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곡된 성 의식이 자신도 모르게 성에 대한 감수성을 무뎌지게 해서 비행과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앞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연인관계에서도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눈에 영진이는 자신들의 성에 안 차는 ‘모지리’입니다. 자신들은 대인관계도 문제없고 자라오면서 공부도 그럭저럭 잘했는데, 큰아들 영진이는 한 번씩 이렇게 엉뚱한 사건을 쳐서 학교에서 연락이 옵니다. 그러다 보니 미덥지 않아 매사에 이것저것 확인을 하고, 단속시키기에 급급합니다.     


영진이는 영진이대로 불만입니다. 기초 학습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영어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면 그러게 미리미리 공부 안 하고 이제 와 왜 그러냐며, 꼭 필요한지 잘 생각해 보고 공부를 어떻게 할 건지 A4 3장 분량의 계획표를 써서 제출하라고 합니다. 그것을 본 후에 학원을 다닐지 다시 얘기하자고 합니다. 뭐 좀 해보려고 하면 얘기 꺼내기가 무섭게 몰아세우는 부모를 보며 영진이는 한없이 높은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 하릴없을 때 분신 같은 핸드폰으로 몇 번 클릭만 하면 신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음란 영상에 빠지게 되면서 좋아하는 축구도 흥미를 잃고, 영상을 보고 나면 죄책감과 수치심에 괴롭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다른 무엇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이번에 이렇게 징계를 받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은 이대로 폭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담쌤은 우리가 딱 좋은 시점에 만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영진이가 도움을 받고자 하는 동기가 있다고 하니 너무 반갑다고, 많이 외로웠겠다고 그의 감정을 타당화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같이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을 해보자고 격려했습니다. 영진이와는 약 2년 정도 상담을 진행했는데 매번 폭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통에 짠하기도 때로는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핸드폰 시간을 정해진 시간만큼만 해보기, 주말에는 동네 친구들과 축구 1시간 이상 하기, 음란물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STOP 이미지 떠올리기 등 작은 전략을 세우고 진행했는데 중간중간에 다른 이야기로 새는 통에 목표설정을 반복하고 수정하면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3학년이 되어서는 진로에 집중하게 되면서 음란물 시청이 많이 줄었고, 이후 본인이 원하는 전공은 아니지만 대학 진학을 했습니다. 어떻게 지내는지 문득 수다쟁이 영진이가 떠오릅니다.     



찰흙 놀이로 집단상담을 하는 중 영호가 만들기를 열심히 하다가 남자 성기 모양을 만들어 장난을 칩니다(이런 경우를 3~4번은 접했네요). 제가 “으이그, 재밌냐? 쌤이 많이 편한가 보네. 장난이 좀 지나친 거 같은데 그래도 좀 예의는 지키자~.”라고 이야기하면 씩 웃으며 다른 모양을 만듭니다. 곧바로 옆자리 진태가 “쌤, 영호는 맨날 야동본대요~”하고 제게 일러줍니다. 


당황한 영호가 진태를 노려보는데, 이어서 제가

“야동 볼 수도 있지 뭐, 보면 어때, 근데 너무 많이 보면 정신 건강에 안 좋대. 쌤도 예전에 누가 링크 보내줘서 한 번 본 적 있는데 자꾸 그 장면이 떠올라서 식겁했잖니. 영호는 어땠어?”라고 애들 편을 들면서 질문을 하면, 살짝 놀라면서도 안심하는 눈치입니다. 그러면서 좀 더 속내를 들어볼 수 있었지요. 궁금도 하고 호기심도 많을 나이인데 직접적으로 들이대면 비난받을 것 같고, 뭔가 찝찝하니 자꾸만 몰래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이라는 것은 여전히 대놓고 얘기하기 껄끄러운 것이고, 어른들도 그것을 억압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지요. 섹스를 좋아한다고 하면 밝히는 발랑 까진 사람이 되고, 그것은 무언가 난잡한 사람으로 만드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그렇게 숨어서 몰래 하는 것으로 쉬쉬하다 보니, 음란물로 접하며 성적인 환상을 갖게 되고, 왜곡된 성인식을 형성하며 영상 속의 성관계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전희(前戲) 없이 등장하는 요란한 신음 소리, 삽입과 사정 장면, 여성의 관능적인 몸을 부각하는 인위적으로 만든 영상과 현실의 차이는 너무나도 큽니다. 이러한 영상에 중독되면 성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퇴화할 수 있습니다.     


저도 갱년기에 접어든 어른이지만 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고정된 관념이 깊이 박혀 있어서 개방적으로 표현하는 게 어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뭔가 숨기려고 하면 상담 중에 내담자와 진실하게 만나기가 어렵더군요. 또, 어른이랍시고 아이들에게 몸가짐을 강조하며 시대적 상황과 요즘 청소년의 가치관을 고려하지 않는 가르침만을 고수한다면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성”에 대해 섣부른 비행으로만 취급하게 되면, 청소년의 성적인 자극과 욕망은 점점 더 지하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어 오히려 오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성적 욕구는 정당한 방식으로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시립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2021년 청소년 성문화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의 보고에 의하면 중학생(264명)은 응답자 중 71명(27.3%)이 사랑과 연애, 59명(22.7%)이 성욕 조절, 57명(21.9%)이 피임 등에 대한 교육을 가장 많이 희망하고, 고등학생(455명)은 136명(30.6%)이 사랑과 연애, 125명(28.1%)이 피임에 대한 성교육을 희망한다고 응답하였습니다. 또한, 총 1,140명 중에 244명(21.7%)이 ‘사귀는 사이라면 성관계가 가능하다’고 보고하였습니다(초등학생 36명(8.8%), 중학생 53명(20.0%), 고등학생 155명(34.6%)).      

어떠세요? 저도 결과를 보고 살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의 필요는 이렇게 직접적이고 실제적이며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바로 알고, 상대에 대한 동의와 존중의 태도를 가르쳐야 이들이 무분별한 환상으로 성적 호기심을 채우지 않고, 바람직한 성문화를 인식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위를 하고 난 이후 느끼는 감정이나, 직접적인 성관계 외에도 키스나 애무 등의 접촉으로 친밀함을 느낄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거지요. 상담에서는 못할 이야기가 없다고 합니다.      


저는 상담 중에 섹스 이야기가 나오면 주로 피임을 잘해야 한다는 것과, 어떤 마음으로 섹스를 하는지, 상대가 원한다고 무조건 응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바로 알아야 내담자들에게 올바른 성 지식을 알려줄 수 있으니 앞으로도 갈 길은 멀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안전하고 즐거운 ‘성’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아이들과 자유롭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건강하고 즐거운 성생활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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