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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르 왕자 Nov 30. 2023

불수능은 왜 반복되는가?

동기와 질문 없는 유형반복 학습의 정해진 결말 

온화하던 11월의 초순을 지나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가 대한민국에서는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11월 둘째 주 목요일, 이 날은 수십 년째 하나의 시험을 위해 지정된 날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은 이들이 치는 시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해가 뜨기 전 시작하여 해가 질 무렵 끝나는 매우 긴 터널이다. 시험이 끝나고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홀가분함과 아쉬움이 섞인 묘한 표정이 묻어 나온다. 


올해 수능은 교육과정평가원과 EBS 현장 평가단의 발표와는 달리 수험생에게는 체감난도가 높았던 시험으로 원점수기준 1등급 커트라인이 전년도에 비해 많이 하락한 수능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패턴은 수십 년의 수능역사에서 계속 반복된 레퍼토리로 수험생 부모가 아니거나  이미 대학생 된 된 자녀를 둔 어른들의 눈에는 크게 놀랍지 않은 뉴스다. 그러나 당해연도 시험을 치른 수험생과 학부모는 아마도 시험결과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고 대학입시 전략을 세우느라 분주할 것이다.  수험생들이 자주 간다는 게시판이나 대형학원의 게시판에는 내년을 기약하겠다는 글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데 필자가 보기에는 그냥 내년 시험이 쉽게 나온다는 데 판돈을 거는 도박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능시험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익숙한 문제부터 아주 생소하게 느껴지는 문제까지 다양한 수준의 문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의 모든 시험이 그렇듯이 주관하는 기관이 있다는 것은 이 시험도 만드는 데 매뉴얼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한 평가요소와 내용요소가 정해져 있어 일종의 레시피가 존재한다. 수능시험문제를 만드는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 이러한 과정에 참여한 적 없는 필자가 수능문제의 출제에 관한 언급을 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다른 여타의 시험문제들을 출제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제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해진 틀에서 출제의 '미학'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학생들의 시각으로  잘 풀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다시 학생들의 눈높이, 혹은 수능시험지를 받아 든 교수의 입장으로 돌아와서 이 문제들을 주어진 100분의 시간 내에 풀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 생소한 문제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쏟아붓다가 시험을 마치는 종이 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러한 당황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학원으로 가서 사교육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 마음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늘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밖에서 구하려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봐서 아는 문제가 아니라 생소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출제자가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한 긴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와 실패,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인고의 시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학원에서 학원선생님이 던져주고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고 나서 수능에서 나오는 문제를 자신들만의 분류법으로 분류하여 풀이법의 강의를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만으로 수능 시험장에서 생소한 문제를 맞힐 수 없는 법이다. 돈으로 재능을 살 수 없음은 물론 겪어봐야 알 수 있다. 병을 고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나의 면역력이다. 


'유형반복학습 패턴'이 얼마나 한국사회에서 성공적이었는지 이 성공의 미신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좋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한 경쟁을 위해 중학교부터 성적에 전전긍긍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기보다는 장사수단이 좋은 학원들의 공포분위기 조성과 그들의 실적발표에 현혹되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물론 학원시스템에 가서도 이단아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학원 시스템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간파한 똑똑한 친구들은 다시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바른 길을 갈 것이다. 수학문제를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계속 들이다 보니 수학문제를 낸 출제자와의 대화나 출제자의 원래 의도를 파악할 틈 없이 학원 선생의 시각에 지배당한다. 그들이 반복적으로 내뱉는 "이 문제는 OO 년도 기출분석에서 이미 한 번 봤어. 살짝 모양이 바뀌었지만 푸는 방법은 쪼개기야" 이 말이 비록  그들의 입장에서 사실을 말한 것일지라도 수험생들은 듣지 않는 게 좋다. 필자가 직업을 걸고 호언장담하건대 출제자는 결코 학원 선생들의 생각을 좇아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세상에는 모두가 어려워하는 언뜻 보기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문제와 씨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보기에 정답이 정해져 있는 수학문제는 별로 흥미를 돋우지 못하지만 언론이 하도 물어보는 통에 저명한 수학자인 김민형 교수도 수능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수능문제는 킬러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글쎄 소위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사교육으로 광역 도시의 아파트 집값을 갈아 넣은 장본인이 있다면 그는 매우 억울하리라. 그러나 킬러문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험장에서 처음 보는 문제를 정해진 시간 내에 잘 풀어낸다는 것은 직업 수학자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냥 수험생이 보기에 처음 보는 낯선 문제가 있을 뿐이다. 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신한' 문제란  '장비빨'로 풀 수 없는, 단련된 근육의 힘만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타협은 없고 본질을 파악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사실 오직 할 수 있는 말이고 그뿐이다. 그런데도 아래 22번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사교육을 예약하려는 중생들이 존재하니 관세음 보살은 성불하기는 그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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