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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돌스토리 Feb 12. 2023

하와이에서 소주의 가치

하와이 story.3 - 한국에서는 외국음식을, 외국에서는 한식을

하와이의 대표적인 음식은 무엇일까?
나의 하와이는 김치찌개와 삼겹살 그리고 소주이다.






 경험을 중요시하는 편이라 해외에 나가면 웬만해서는 한식을 찾지 않는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외국인데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여행의 추억과 느낌을 만들어 놓고 싶어서다. 하와이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어른들과 함께한' '패키지여행'이었기에 나에게 메뉴 선택권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대부분 한식을 먹었다.


해외에서 한식을 찾는 첫 번째 여행이라 심리적으로 불편했다. 여기까지 와서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맛있게 먹어야 한다니... 먹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한식을 먹음으로써 놓치는 외국음식, 일종의 기회비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메뉴판을 확인하고 나니 이것을 꼭 먹어야 하는지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다. 단품 찌개의 가격이 20,000원 가까이 되었고, 정식이라고 볼 수 있는 한상은 30,000원이 훌쩍 넘었다. OMG



여기는 한국일까 하와이이일까? 메뉴 가격을 보면 알 수 있다.



여행의 특수성

- 여행이라는 단어가 만드는 가치의 왜곡


불편함의 마침표는 소주였다. 당시의 나는 지금과 달리 주종을 불문하고 술을 싫어했다.* 하지만 한국의 어른들은 소주 권하기에 익숙하다. 비지 않는 나의 소주잔을 보며 문득 한 잔의 가치가 궁금했고, 가격표를 본 순간 이거야 말로 하와이까지 와서 마실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의문이 샘솟았다. 

* 지금은 맥주와 와인을 좋아한다. 지금 하와이를 간다면 매일 같이 맥주를 마시고 취해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하와이에서 소주 가격은 15,0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소주 가격이 5~7,000원까지 올랐지만 당시에는 2~3,000원이면 주점에서 한 병을 살 수 있었다. 가뜩이나 소주의 맛을 알지 못했던 나는 5배가 넘는 돈을 주고 억지로 쓴 맛을 느끼는 행위가 이해가지 않았다. 그들이 과연 한국에서도 20,000원짜리 김치찌개에 15,000원짜리 소주 한 병을 마시는 사람들이었을까?


더 많은 여행 경험이 쌓이고 나니 이런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여행'이라는 마법 같은 단어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여행은 1년에 몇 번 되지 않는 특별한 경험이다. 그 안에서는 '여행이니까'라는 만능열쇠가 존재한다. 여행이라는 토핑을 얹은 소주의 가치는 15,000원을 넘어서기 때문에 그들은 15,000원 밖에 안 하는 소주를 편하게 마실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마법은 사람마다 다른 효과로 나타난다. 개인의 호불호를 반영해서 그것의 가치를 몇 배로 뻥튀기시켜 준다. 이 효과는 내가 일본에서 인당 25만 원이 넘는 오마카세를 고민 없이 먹어볼 수 있게 만들었고, 태국에서는 매일 호텔 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치를 부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누군가는 한국에 오면 쳐다보지도 않을 기념품을 사는데 지갑을 열 것이고, 누군가는 다이어트 중이라는 것을 잊고 하루에 5끼도 넘게 먹을 것이다.


그들이 왜 비싼 한식과 소주를 먹었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면 더 격하게 공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무려 하와이까지 가서 맛있는 것은 구경도 해보지 못하고 김치찌개와 삼겹살만 먹어보고 왔다는 것이다.






하와이에서 내 입이 행복했던 유일한 순간

- 엄청난 팬케이크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기다려졌던 식사는 매일 아침이었다. 조식만큼은 호텔에서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나를 한식으로부터 구해주며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주인공은 미국의 팬케이크와 에그베네딕트였다.*

*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리가 묶었던 힐튼 호텔의 MAC 24-7이 팬케이크로 매우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작아 보이지만 엄청나게 큰 팬케익이 3장이나 쌓여있다. 오쪽 사진은 사이즈를 가늠하기 위한 참고사진 [출처 | 무한도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생각한다. 조식 메뉴를 본 우리도 그랬다. 한국에서 먹었던 팬케이크는 한 명이 한 접시를 비워내기에 충분했다. 그 생각은 1인 1 팬케이크를 주문하게 만들었고 엄청나게 많은 잔반을 남겨야 했다. 우리가 시킨 팬케이크는 그냥 팬케이크가 아니었다. '방석 팬케이크'라는 별명을 가진 엄청난 요리였던 것이다.


한 번 경험한 이후부터는 1인 1 팬케이크를 주문하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팬케이크가 너무나도 맛있었기에 남길 것을 알면서도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주어진 조식 쿠폰 2장을 이용해서 팬케이크 하나와 다른 요리를 하나씩 주문해 보기 시작했다. 에그베네딕트가 그중 하나였고 이전에 먹어본 적이 없어 인생 첫 에그베네딕트였는데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남는다.



하와이에서 처음 알게되었던 에그베네딕트



나에게 있어 하와이의 음식은 방석 팬케이크와 에그베네딕트가 전부이다. 이후에 비슷한 맛을 느끼고 싶어 다양한 팬케이크와 에그베네딕트를 먹어보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먹어본 팬케이크와 에그베네딕트는 내게 매번 실망만 안겨주었다. 미국의 맛인지 여행의 맛인지 모를 그 무언가를 한국의 음식은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이제 웬만해서는 한국에서 팬케이크를 먹지 않는다.


다시 하와이를 가서 다른 숙소에 묶더라도 힐튼 호텔의 MAC 24/7에 방문해 팬케이크를 먹을 계획이다. 어쩌면 하와이를 가는 것이 그 팬케이크를 다시 먹어보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게 팬케이크는 강렬했다. 혹시라도 하와이를 방문할 예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아래 google map을 연결해 두었다. 주의할 점은 웬만하면 몇 명이 함께하더라도 팬케이크는 하나로 충분할 것이라는 것이다.



- 24시간 내내 영업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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