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을 이해하기 위한 세 번째 퍼즐.
#1
"얼큰하고 입에 짝짝 들러붙는 국물, 쫄깃한 면발"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인스턴트 라면을 좋아합니다.
전 국민이 매주 한 번 이상 끓여 먹는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대한민국 국민에게 라면은 대중적인 음식 그 이상입니다.
#2
"라면의 명과 암"
이렇게 친숙한 라면이지만 만날 때마다 늘 고민거리를 던져 줍니다.
맛을 위해 필수적인 높은 나트륨과 높은 칼로리는
우리가 선뜻 라면을 선택하기를 주저하게 하죠.
다이어터와 몸을 키우는 사람에게 라면이 최대의 적이라는 얘기가 있는 만큼,
나트륨 조절 및 혈압을 관리하는 등 건강을 신경 쓰는 사람에게도
라면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에요.
즉, 라면은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극명하게 구분되는 대중적인 음식입니다.
#3
"라면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희망"
그래서 마케터들은 소비자들의 이러한 목소리를 캐치해 냈죠.
고착화된 넘버원과 과점적 경쟁을 이겨낼 수 있는
경쟁자와 차별화하며 독자적인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믿었습니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수위 브랜드까지는 아니어도 스테디셀러가 되기를 바랐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큰 꿈을 품고 마케터들은 변화한 소비자 트렌드를 감안,
야심 차게 이른바 '건강한 라면'을 출시합니다.
나트륨을 줄이고, MSG를 제외한 라면을 출시하기도 했고,
면을 튀기지 않아 칼로리가 낮은 라면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 자연재료를 많이 넣은 라면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자, 결과는 어떤가요?
#4
"분명 그럴듯했는데..."
하지만 여전히 라면 시장에서 수위 사업자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가 목표가 아니었다 치더라도
여전히 이른바 '건강한 라면'의 인기 소식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일반적인 마케터의 관점에서 보면
꽤나 변해가는 소비자를 잘 읽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라면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죠.
"얼굴 이쁘냐?"
남성들이 소개팅을 나갈 때 묻는 대단히 공통적인 질문이라고 하죠?
이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팩터가 라면 시장에 있었던 겁니다.
'맛'과 '가격'이죠.
라면은 대한민국 사람에게 '싸고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강한 라면'이 성공하기 위해선
라면이 '싸고 맛있는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고객의 인식을 '이제는 라면은 건강하게 먹는 수단'으로 전환시키거나,
그러지 못하다면, 기존의 인식에서 충분한 만족도를 제공하며
플러스알파의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은 기존의 선택을 버리고 새로운 인식에 따른 혹은
더 나은 가치 발견을 통한 브랜드 스위칭 혹은 시장 진입이 일어날 테니까요.
그러나, 애초에 일개의 브랜드가 환경적 도움 없이
소비자의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과거의 우지 파동, 페놀 사태와 같이 극단적인 이슈가 발생한 것도 아닌 이상,
소비자의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사실 같은 말 같아요.
그렇다면, '건강한 라면'이 취했어야 할 전략은
'맛'과 '가격'은 지키면서 건강이라는
플러스알파의 가치를 더해 주는 것이 옳은 전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이룩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건강한 라면'은 고객들이 이 라면에 대해
더 큰 지불 의사가 있으리라 잘못 판단했습니다.
더 투자를 해야 했고, 차이를 두어야 했기에 원가는 상승했을 테고,
그래서 '가격'은 올라갔죠.
더 큰 문제는 '맛'이었어요. 건강해야 한다는 이유로
라면에 기대하는 그 '맛'이 나쁜 쪽으로 변해 버린 거죠.
(라면에 기대하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맛)
시장에서 소비자가 인식하는 라면이라는 상품의 특징이
특정 팩터 (맛, 가격)의 민감도를 과소평가하고
일부 마이너 한 소비자의 제한된 니즈를 과대평가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짜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달리 보일 수 있을까 와
어떻게 하면 있어 보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둔 결과라는 것이죠.
#5
"마케팅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연금술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회의를 통해 다양한 주체를 만나다 보면, 그들이 마케터에 기대하는 것이 크게 2가지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것'과 '달라 보이는 것' 이죠.
하지만 위에서 보았듯, 단순히 '새로운 것'과 '달라 보이는 것'은 성공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잠깐 불타 오른 후, 땅으로 떨어지는 불나방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 건
오래 살아남아 있는 브랜드를 보면 더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고로 마케팅은 '새로움을 향한 맹목적이며 화려한 신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쉽게 변하지 않는 소비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 그리고
'새롭지 않은 본질에 대한 철저한 내재화'가 빚어낸 고루한 산물일 뿐이죠.
이제 마케팅과 마케터에 대한 착각을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