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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Jun 21. 2023

깨어남

 평소에 나는 굉장히 예민하고, 신경이 날카로운 편이었다. 두통과 불면증이 심했고,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들지를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많았고,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생도 했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에, 삶이 전반적으로 피곤했었다. 그런 까닭에 회사와 같이 수직적인 문화가 만연한 곳에선 내 목소리를 드러내기를 힘들어했고, 어떤 의견에 반대되는 주장을 하거나 누군가와 싸우는 일은 심장이 벌벌 뛸 정도로 내게는 너무나도 고역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삶을 살아가던 와중에, 문득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기억은 나질 않지만 아마 31살이 되던 겨울 즈음, 늦은 밤에 찾아온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자기혐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보란 듯이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으며, ‘나’라는 인간은 삶이라는 경주에서 소외되고 뒤처진 채,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붙잡았다. 더 이상 살아나갈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방법이 있다면 차라리 그 방법을 택하고 싶을 정도로 내 정신적인 상태는 처참했다. 

 고통에 신음하며 무슨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러야 하나를 고민하던 때, 그 찰나적인 순간, 갑자기 나의 등 뒤에서 어떤 새로운 느낌 같은 것이 척수를 타고 뇌 이곳저곳에서 느껴져 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표현해보자면, 분리되고 독립된 개념으로서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만물이 유기체처럼 하나의 전체적인 질서로 움직이는 듯한, 그리고 그러한 전체의식이 나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듯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비롭고 묘한 느낌의 경험이었다. 몇 분 후에, 내 몸은 마치 하늘에 붕 뜬 것처럼 극도의 가벼움을 느꼈고, 무엇인가가 나를 계속해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한 십분 쯤 흘렀을까, 그 신비로운 경험은 끝이 나버리고, 나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짧지만 강렬한 경험 이후로, 내게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견했을 때만큼의 생각의 대전환이 생기게 되었다. 그간 느껴지던 극단적이고 대립적이었던 요소들, 가령 성공과 실패, 아름답고 추한 것, 사랑과 증오, 부와 가난 등 이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용광로처럼 하나의 요소로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고, 만물을 비롯한 모든 것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듯한 만물의 합일(合一)의식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 이후에 찾아온 영적인 깨어남, 그것 이후로 나의 많은 생각들이 바뀌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지만, 나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세상과 만물을 구성하는 깊은 우주적인 실체임을 단박에 깨달았다. 작게는 나무와 고양이, 새들과 강아지, 풀포기와 돌들에서부터,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전체적인 질서와 관점, 거대한 신의 섭리 같은 무언의 법칙들까지, 눈을 감아도 그것들은 어디선가 나와 접속되어 있어서 마음속으로나마 그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고, 영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처럼 누군가가 내 감각들을 확장시켜 놓아 수십, 수백, 수천 가지로 만물의 정기(精氣)가 되어 뻗어나가는 것만 같았다.


 나의 생명이 위태롭던 시기에 그런 깨어남이 찾아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했다. 그 이후로 나의 관심 대상은 온통 은총과 섭리, 영혼의 성장, 도(道)와 진리에 관한 것들로 탈바꿈했다.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신비로운 영적 경험 이후로 우수수 바뀌어버리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훗날 든 생각이지만, 이때 경험했던 영적인 체험을 나는 운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반드시 그렇게 왔어야 하는, 그 고통을 마주하고 난 이후로 마치 성인(聖人)의 대열에 올라선 듯한 그런 느낌,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경험해야 했을 것이라고 믿는 운명이라고 말이다. 내가 느꼈던 이 짧았던 경험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見性)과 불성(佛性), 확철대오, 그리고 도가사상에서 말하는 도(道), 서울대학교 성해영 교수님의 강연에서 접하게 된 ‘세속적 신비주의’일 것이라고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굳게 믿고 있다. 

 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일까? 무엇이 진정한 것일까? 무엇이 의미 있는 것일까? 어느 순간에 이러한 철학적 의문들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고, 현재 내 삶의 중심에 이러한 질문들이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나의 영적 여정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불가사의하고 또 때로는 신비로운 영성의 항로에 올랐다는 것, 영적인 여정의 위대한 출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글을 마무리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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