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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Dec 21. 2023

어른이 되어버린 크리스마스

 세계 각지는 이맘때가 되면 한바탕 시끌벅적해지기 마련이다. 한해의 끝을 알리는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과 희망이 가득 넘치는 크리스마스. 길거리를 나가보면 부모님의 손을 꼭 붙잡고 나온 아이들도 보이고,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 연말 대목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도 여럿 보인다. 모두에게 설레고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찾아온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나들과 맞은 행복했던 나날들.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세상에는 연탄 하나조차 때기 힘들어, 고독과 추위와 싸워가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는 말. 갓 태어난 아기의 똘망똘망한 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새하얀 마음처럼 순수함을 간직하라는 말. 우리 주위에 힘든 형편에 처한 분들을 위해, 선행을 베풀면 저 하늘에 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커다란 로봇 장난감을 갖다 주신다는 말. 그때 당시의 나는 그 말들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세상 물정 몰랐던 나로서 누군가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었을까? 꼬마였던 나는 몇 분의 고민 끝에 나름 비장한 결심을 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돼지저금통을 장롱에서 꺼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동전들을 돼지저금통에서 꺼내 책상 위에 부은 후, 문방구에 들러 도화지 몇 장과 저렴한 크레파스를 한 다스 구매했다. 그리고 차갑지만 따뜻한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세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행복한, 모두가 함박 미소를 짓고 있는 그런 세상을.      


 점차 나이가 들어가니, 순수하고 즐거웠던 크리스마스는 이제 내 기억에만 고스란히 간직되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나날처럼 박제된 것만 같다.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친구들은 제각기 직장에서 맡은 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었고, 자식을 낳아 아버지가 된 친구들도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것은 오고 어떤 것은 가버렸다. 나는 손을 뻗쳐서 그것들 모두를 잡고 싶었지만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버렸고, 책임감이 필요했으며 더는 어린 날의 추억들을 회상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과 기억들.      


 시간이 지나 세상의 씁쓸함도 느껴보고, 이리 치이고 저리도 치여보니 한해의 끝을 알리는 크리스마스가 짐짓 무거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일까? 내게 주어진 일들을 프로페셔널하게 수행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이 들기도 하고, 훗날 누군가와 결혼하여 평생을 백년해로하며 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며,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날이 변하는 세상이 두려울 때도 있다. 나는 머리를 맑게 비운 후, 세상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을 떠올려보기로 한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따뜻한 잠자리에 드는 그들의 모습.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가장들의 모습을. 추운 오늘 밤에도 어딘가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하여 나는 기도할 것이다. ‘어른’이라는 이름의 어린이들이여, 모두들 힘을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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