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겸 Jun 10. 2023

지하철 하나에 울고 웃는다.

서로가 공정한 경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철역이 없던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출퇴근이 고달팠다. 서울로 출근하려면  광역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을 선채로 매달려 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예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성냥갑 버스에 갇혀서 서로의 숨소리와 얕은 신음을 무신경하게 주고받아야 했다.  그마저도 설 자리가 없으면 몇 번이고 버스를 그냥 보내야 했다. 광역버스가 싫으면 만원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지하철로 환승해야 했다. 지하철을 타도 몸이 구겨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출근을 하면 일을 하기도 전에 하루 에너지의 반을 소진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지하철 역사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리고 정말 집에서 5분 거리에 지하철 역사가 생겼다. 출퇴근이 너무나도 쾌적해졌다. 이른 아침 출근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마을버스도 필요 없고 환승도 없었다. 단 한 번의 지하철로 집 현관에서 회사 빌딩 게이트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광역버스를 타도 언제나 앉아서 오갈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 쾌적함을 누릴 거라 생각했건만 그러지 못했다. 지하철 때문에 전세가격이 뛰고 매매가격이 뛰었다. 결국, 치솟는 가격이 문제였다. 결국 지하철역이 없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전세대출받아 집주인만 좋은 일 해주기 싫은 탓도 있었다. 내가 떠난 후에도 간간히 동네 소식을 들었다. 내가 살았던 구축 아파트는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했고 매매가격은 두 배로 뛰었다. 가격은 신축만큼 비싸졌고, 주변 아파트 보다 더 훌륭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주변 아파트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그렇게 지하철역 하나에 사람들이 울고 웃었다.


이사 간 새로운 동네는 도심 사이의 섬 같은 곳이었다. 광역버스는 커녕 그 흔한 초록색 지선 버스도 없었다. 지역버스 1개 노선과 마을버스 3개 노선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배차 시간 가격이 너무 컸다. 버스를 놓치면 15~20분은 마냥 기다려야 했다. 여름철 장마가 하늘을 덮치면 동네로 가는 도로가 일부가 잠기기도 했고 겨울 함박눈이 세상을 두껍게 덮으면 지하철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도 거북이가 되었다. 이러니 콜택시를 불러도 잘 오려고 하지 않았다. 당연히 출퇴근은 예전보다 곤혹스러웠다.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한 곳이었으므로. 하지만 이런 섬을 찾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모여드니 신축 아파트가 지어지고 상가 건물이 들어섰다.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서울 도심으로 가는 도로가 넓어지고 바람에 흙먼지만 일던 나대지에 지식센터와 대기업 건물을 짓는 굉음의 크레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오피스텔이 전나무 숲처럼 빽빽이 들어섰다. 동네 공원에 가로등이 완비되고 그 아래로 산책을 할 수 있는 정겨운 오솔길이 생겼다. 여러 이쁘고 개성 있는 커피숍과 가게들이 군데군데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쁜 동네라고 소문이 났고, 방송국에서 드라마 촬영을 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새로운 지하철 노선과 역사 후보지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지하철역사 후보지를 두고 사람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구도심과 신도시 간으로 갈라지고, 또 그 안에서 갈라졌다. 자기 집 지척에 지하철역이 들어서야 한다는 저마다의 논리와 근거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로 넘쳐났다. 사람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서 거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소리 없는 비난과 비방이 국경 없는 거대한 인터넷망을 타고 곳곳으로 번져갔다. 구도심 사람들은 서울 주요 일자리 지역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노선과 광역버스, 지선버스, 간선버스를 품었음에도 내가 사는 동네를 똥덩어리라고 부르며 비하했다.(이보다 더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괜히 나왔을까 싶었다. 부모가 남긴 초라한 유산을 두고도 형제가 득달같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싸우는 것도 본 적이 있는데 하물며 남인데 오죽할까? 하지만 지하철 하나에 집 값이 천지분간 못하고 아파트 층 수만큼이나 ‘억’으로 뛰는데 가만히 먼 산 보듯 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본디 사람에게 평균보다 뒤처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사람들에게 밀리고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공포 중에 하나이다. 사람은 현재 가치 보다 미래의 잠정적 이익과 손실에 더 심리적으로 움직이며 이익이 손실보다 2.5배 크거나 그 반대일 경우 행동을 한다. 따라서, 지금 집 값 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높아질 이익 또는 그 이익의 상실 가능성에 사람들은 갈라지는 것이다. 최근 요사이 집 값이 떨어져 모두가 속상한 상황에 지하철 만큼 집 값 올려줄 소식이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똥덩어리로 불리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서로가 익명성 뒤에 숨어서 과도한 비하는 하지 말고 공정하게 경쟁했으면 좋겠다. 만약, 지금처럼 악의적인 비난과 비방만 한다면 오랫동안 상처가 남고 새로운 지역갈등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공정한 경쟁을 하자. 그러면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승자에게 박수를 쳐주고 패자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다. 그래야 결과에 따른 후유증이 오래 가지 않는다. 그것이 성숙한 이웃 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와 옆 동네에 가족이 살고, 형제가 살고, 친구가 살고 있지 않겠는가? 지하철역 하나에 울고 웃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때문에도 울고 웃는다.  


-끝-


※ 글과 사진은 동의를 받지 않고 상업적인 용도 사용 및 무단 게시/편집하는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따라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