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초저녁이었다.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러 동네 언덕진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언덕을 타고 흘러내렸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평범한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잘 차려입은 흰색 타이즈 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로드자전거를 타고 인도를 내려오는 두 명의 아줌마였다.
”지나갈게요. 비키세요. “
인도의 가장자리에 선 우리는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얼음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로드 자전거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우리를 살짝 우회해서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가면 아무 일도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말이 들렸다.
”좀 비키라고요. “
욱하고 화가 났다. 인도에서 사람이 자전거 보다 빨리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다. 나 혼자 겪는 상황이라면 똥 밟은 심정으로 자리를 피해겠지만 가족이 순간 위험했는데 모욕까지 당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나를 뒤로 한채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에게 소리치며 항의했다. 주변의 소란에 사람들이 나와 그들을 번갈아봤다. 잘못을 모르겠다는 아줌마 대신 다른 아줌마가 사과하는데 자꾸 아내가 나를 막아섰다. 이런 상황에 매번 제대로 할 말도 못 하고 불안한 미소로 어물쩍 짓는 아내의 미소에 나는 더 욱해버렸다. 외식할 의욕이 사라진 나는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서도, 집에 있으면서도 아내의 답답함에 욱욱 거렸다. 멈추어야 하는 건 알았지만 멈추지 못했다. 내 편이 되어주기도 못하고 그런 상황에 늘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의 모습에 파고처럼 치밀어오는 감정을 밀어낼 수가 없어 괴로웠다. 아마도 아내는 절대 죽을 때까지 이런 성향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오랫동안 이 장면과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아이가 나의 모습에 놀라 불안한 눈으로 멀찍이 거리를 둔 모습도. 잠을 뒤척이는 새벽까지 아내에게 미안하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반추하며 반성하겠지. 그럼에도 내 가족을 불한당들로부터 지키려면 나는 나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욱하기보다는 뒤로 한발 짝 물러나야겠지.
-끝-
※ 글과 사진은 동의를 받지 않고 상업적인 용도 사용 및 무단 게시/편집하는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따라 공 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