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 것과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글쓰기의 최전선> 은유)라고 했는데, 나는 쥐며느리로 아주 긴 세월을 살았고 며느리가 된 지는 이제 겨우 몇 달이다. 올해 내가 가장 이루고 싶었던 일이 어디에든 나의 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아직 갈 길이 멀긴 해도 글을 쓰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아주 큰일을 한 것처럼 뿌듯하다. 물론 아직도 ‘글을 쓴다’고 말하기에는 규칙적이지도 꾸준하지도 못하고, 본업인 번역의 마감이 임박해오면 몇 주 동안 글쓰기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지만, 예전처럼 글쓰기가 막막하지 않고 한동안 손을 놓고 있어도 머릿속에서 글감이 꿈지럭거리니 그야말로 엄청난 발전이다.
최근에 완벽주의자에 관한 책을 번역하다 보니, 내가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벼르기만 하고 글을 쓰지 못했는지 완벽주의자적 관점에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글을 쓰려면, 누구나 인정할만한 특별한 경험이나 성장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헨리는 3년간의 감옥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브론테 자매도 불우하고 결핍 투성이었던 어린 시절이 소설의 양분이 되었다. 가난한 싱글맘이었던 조앤 롤링이 카페에서 아기를 재우고 분유 값을 벌기 위해 글을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마도 나는 글쓰기에 대해서만큼은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다면 애초에 쓰지 말자(All or nothing)는 식의 완벽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집안에 글로 이름을 날린 어른들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연결 지어지는 것도 싫었고 그 연결로 인한 기대에 부응할 자신도 없었던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나는 지나치게 평범한 삶을 살았다. 평범도 지나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가가 되기에는, 이야기꾼이 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굴곡 없이 밋밋하다고 생각했다. 삶의 기복과 불행만이 글의 양분일 수 있다는 생각에 평범하기 그지없고 안락했던 나의 삶이 싫었던 적도 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철딱서니가 없었는지. 결국 안 쓰기로 작정해 놓고 온갖 핑계를 참 열심히도 끌어 모았다.
살아온 삶이 평범해서 글을 못 쓴다는 핑계를 집어치운 뒤로는 딱히 다른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글쓰기의 양분이 될 만한 특별하거나 기구한 사연이나 성장과정은 없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말하고 듣는 것을 좋아했던 내겐 늘 할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겨우 두 세편의 글에 담으면 끝나는 소재는 아닌지, 과연 글로 쓸 거리이긴 한 건지, 한두 편 쓰고 나서 쓸 얘기가 없어서 영영 글을 못 쓰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수면에 살랑 거리는 것들을 우선 걷어내어 한 편의 글을 만들고 나면, 신기하게도 저 밑에 있던 것들이 숙성되어 하나씩 올라오는 게 아닌가. 내가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존재조차 몰랐을 것들이다. 긴 세월에 걸쳐 노트에 메모했던 것들은 한 단어가 한 편이 되기도 하고 열 단어를 꿰어도 아무것도 안 되기도 하는데, 쓰기 시작한 뒤로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되고 신생 메모들이 끊임없이 생겨 나니, 글감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덜해졌다. 그러니까 일단 써봤어야 했다. 너무 재고 따지지 말고.
생각해보면 번역 일은 나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방해가 되기도 했다. 영미권의 모든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건 아니라서 한국에서 출간되는 책들은 이미 영미권 독자층과 평단의 검증이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나에게 오는 책들은 어마어마한 작가의 어마어마한 작품인 경우가 많고, 그들의 걸출한 문장을 보면서 나는 당연히 위축되었다. ‘뭐라도 쓰려면 이 정도는 써야....’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반면, 번역은 내가 쥐어짜 내지 않아도 ‘다음 페이지가 있는’ 글쓰기라 어떤 식으로든 글로 ‘전진’하고 내가 쓴 글을 다듬고 편집하는 습관은 번역일 덕분에 몸에 밴 것 같다. 번역은 완벽한 내 글도 아니고 완벽한 남의 글도 아닌 그 경계선상의 어떤 것이라, 내가 번역을 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일찍 글을 썼을지, 아니면 번역이 아니었다면 아예 글을 쓰고 싶은 욕망 자체가 없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다음 페이지가 있는 글도 쓰고 다음 페이지가 없는 글도 간헐적으로나마 쓰고 있는 지금 나의 상태가 나름 만족스럽다.
수영을 잘하게 된 뒤에야 수영 코치들이 했던 희한한 말들(‘몸의 힘을 빼고 해라’, ‘물과 싸우지 말고 물의 흐름을 타라’ 같은)을 비로소 이해하는 것처럼, 짧은 글이나마 스무 편째 써보니 비로소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부딪쳐 보기 전에 머리로 이미 안다고 생각한 것들은 사실 1도 아는 게 아니었다.
조금 뜬금없지만, 대학시절 교양국어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 즈음 자주 떠오른다.
“시인이 되지 못한 사람은 소설가가 되고 소설가가 되지 못한 사람은 평론가가 된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특정 직업군에 대한 이 냉혹하고 충격적인 단정은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남았다. 교수님은 그 말의 의미를 길게 설명했을 테지만, 그리고 나는 분명히 열심히 들었을 테지만, 나의 기억에는 선명하게 남은 것은 오직 저 한 문장뿐이다. 굳이 추측해 보자면, 글을 길게 쓰거나 남의 글을 평하는 것보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그리고 정제된 언어로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활약한 것도 모자라 곤충학자로도 이름을 날림으로써 저런 단정을 조롱한, <롤리타>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작가도 있다. 어쨌든 번역을 평생 업으로 삼은 뒤로 나는 문득문득 글 쓰는 직업군에 대한 계단식 분류를 떠올리면서, 저 분류에서 번역가의 위치는 과연 어디인지, 혹시 비평가가 되지 못한 사람은 번역가가 되는 건지 생각해 보곤 했다.
무엇이 되지 못해서 무엇이 된다는 식의 단순화는 옳지도 않을뿐더러 위험하다. 그런데 번역일이 미치도록 좋았던 나도 늘 마음 한 구석에 허전함 내지는 불완전감이 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런데 뒤늦게라도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니, 단지 시작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완전감이라기보다는 안도감이랄까. 쓰기 시작하면서 번역하는 시간도, 번역하지 않는 시간도 더 사랑하게 되었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다음 페이지가 없는 나의 글이 결국 어디에 다다를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음 페이지가 있고 최종 목적지가 있는 번역과는 달리 나의 글은 목적지도 종착지도 없다. 나의 글은 그저 떠돈다,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전경린)
그러나 올해 내가 마침내 배를 탔고, 낯선 바다를 떠돌기 시작했고, 내년에도 번역 일이 나를 너무 압도하지만 않으면, 이 배를 타고 달의 시간을 계속 떠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묘하게 가슴이 벅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