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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May 19. 2024

23 그 말이 참 따듯했다

똑같은 연을 날려도 바람의 방향이나 강도에 따라 이쪽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저쪽으로 나아가기도 하듯이,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둘러싼 미세한 조건들에 따라 때로는 홀씨처럼 내려앉고 때로는 칼끝처럼 상처를 낸다. 누구나 필요한 순간에 다정한 말을 하고 또 듣고 싶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큰일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안다. 우리가 얼마나 말을 할 줄 모르는지.       


부모님을 떠나보냈거나, 큰 병에 걸렸거나, 아픈 아이를 지켜보아야 할 때,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했거나 오랜 시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서 넋을 놓고 앉아 있을 때, 평생 들어야 할 위로의 말들을 한꺼번에 다 들어도 시원치 않을 그런 때, 상처가 있는 대로 벌어져 있어서 혹시 누가 건드릴까 나도 모르게 온몸에 바짝 힘을 주고 있을 때, 누군가가 건네는 위로의 말에 어이없게도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상처받으라고 한 말일 리가 결코 없을 텐데도.      


나 역시 지금까지 두고두고 옹졸하게 되새김질하는 몇 가지 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아팠던 것은 부모님을 떠나보냈을 때 들었던 위로의 말들이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는 말은 참 듣기가 아팠다. 부모는 나에게 유일무이하고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존재라, 내 부모의 죽음이 그렇게 큰 분류로 평범하게 뭉뚱그려진다는 것 자체가,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게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신이 너무 사랑해서 일찍 데려가셨다는 말도 신이 그렇게 고약한 심술을 부리는 존재일 리가 없을 것 같아서 그때나 지금이나 와닿지 않는다. 딸의 친구가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리고 그의 곁을 딸이 지키고 있을 때, 그가 믿는 신을 운운하며 자신의 신을 믿지 않은 탓이라는 친구의 한없이 가벼운 말은 너무도 따가웠다. 

딸이 우울로 힘들어할 때, 딸을 아프리카 오지에 보내서 개고생 시켜봐야 한다는 지인의 말도 아팠고, 공부를 잘 할 줄 알았던 아들이 엉뚱하게도 래퍼가 되고 싶다고 랩 레슨을 받고 싶다고 해서 허락해 주었을 때, 하나뿐인 아들을 너무 성의없이 막 키우는 거 아니냐고 했던 내 친구의 말도 두고두고 아팠다.      


그러나 내가 이런 말들로 상처받았다고 길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 역시 알게 모르게  위로랍시고 얼마나 많은 이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 말을 한참 뒤에 곱씹어보고 내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그제야 비로소 깨닫고 깜짝 놀란 적도 여러번이다. 말과 글에 예민한 나 같은 사람은 어쩌면 더 날카로운 상처를 냈을지도. 나의 부모를 떠나보내기 전에 나의 지인과 친구들의 장례식에서 했던 내가 말들을 떠올려 보면, 하나같이 창피할 정도로 부적절했다. 뭘 알고 한 말들이 아니었다. 부모를 떠나보낸 적이 없으니 그들의 슬픔을 헤아릴 리가 없었다. 그래서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어쩌면 내게 말로 상처 준 이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올해 초 하와이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선물 가게에 들어서게 되었다. 카드코너가 얼마나 큰지, 딱히 카드를 살 생각이 없었는데도 홀린 듯 둘러보게 되었다. 규모도 규모지만 카드가 너무도 세밀하게 분류되어 있어서 놀랐다. 카드로 축하할 일이 생일인지, 졸업인지, 결혼인지에 따라 나뉜 건 당연했고, 감사, 위로, 격려, 그리움, 존경과 같은 감정의 이름으로도 분류되어 있었다. 축하할 사람이 배우자인지, 연인인지, 여자가 남자에게 건네는 것인지, 남자가 여자에게 건네는 것인지에 따라서도 달랐다. 마음을 전하는 글귀조차도 이렇게 대량 생산되는 시대인가? 내심 씁쓸해하며 카드를 훑어보다가, 내 마음을 너무도 잘 표현한 카드 글귀를 보았다. 카드 겉장에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어떤 꿈을 꾸는지 너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라고 적혀 있었고,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아는 우리, 서로가 성장하는 걸, 세상으로 나아가는 걸, 그리고 오늘의 이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지켜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그 모든 순간들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 서로가 있어서 기쁘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내가 쌍둥이 언니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막연하게나마 생각은 했지만 글로 표현하진 못했던 바로 그 마음. 나는 얼른 그 카드를 사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닌 게 놀랍다’는 글을 보태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언니에게 주었고, 비록 카드 공장에서 인쇄된 문구이지만 언니가 그 카드를 받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감동으로 울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드매장이 거대했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선물 가게에 들어섰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실수 없이 매끄럽게 표현한 글귀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카드를 사서 거기에 자신의 마음을 보태어 누군가에게 전했을 것이다, 나처럼.  카드의 글귀는 완벽하진 않을지언정, 무해했다. 모난 곳 하나 없이 안전하고 따듯했다.      


광고회사에 다니던 시절 큰 발표를 앞두고 자신감을 잃고 힘들어하던 나에게, ‘아마 너 엄청 잘 할 걸? 너만 모르지.’라고 했던 회사 선배의 말을 나는 지금도 자주 떠올린다. 내가 꽤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선배가 톡으로 보낸 글, ‘다음에 만날 때 내가 너 꼭 안아줄게’라는 말도 참 따듯했다. 엄마를 잃고 일 년 만에 아빠를 떠나보내며 넋이 나간 채로 앉아 있던 나에게, “선생님, 저는 너무 애기라서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정말 잘 모르겠어요.” 라고 말했던, 애기가 아니었던 어느 편집자의 말도, 잘 모르겠다는 말인데도 그저 충분했다. 


그 말들은 참 따듯했다.       


평생 말을 하고 글을 쓰며 사는 우리모두는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말과 글에 통달해야 옳겠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들이 쌓이면서 뭘 안다기보다는 ‘안다고 생각’ 하진 않는지. 그래서 말도 글도 점점 더 어려워만 지는 건 아닌지. 요즈음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이면, 나는 차라리 입을 다문다. 바라건대, 나의 침묵이, “네가 어떤 슬픔을 겪건, 한두 마디 말로 위로받을 정도의 가벼움이 아니란 걸 알아, 그래서 나는 차라리 입을 다물게.” 라는 어마어마한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바란다.       


굳이 말을 해야한다면,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말로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어떤 순간에도, 내가 너의 슬픔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에 휩싸이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거기서 더 욕심을 낸다면, 두고두고 기억나는 따듯한 말을 하고 싶다.   ‘그 말 참 따듯했어’라고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는, 따듯한 조약돌 같은 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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