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허락된 것들을 누리며 살기 - 프롤로그
틈나는 대로 ‘내 글’을 쓰겠다던 호기로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하루하루 과제에 허덕이는 날들이다.
전공을 바꿔 진학한 대학원 공부는 흥미롭지만 쉽지 않고, 전부 다른 전공과목을 네 개나 듣는다는 건, 심지어 그중 학부 전공과 일치하는 게 없다는 건 내가 황야와 같은 무지의 어느 한복판에 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흔치 않은 전공이다 보니 어딜 가나 전공에 대해 질문을 받지만 나는 아직 대학원 전공을 공부하지 않은 상태고, 학부 전공이 무엇인지까지 밝히는 순간엔 그 특이함에 당황한 사람들의 정적만이 공간을 채우고는 한다. 그래서 내게 강의실이란, 나의 지적 결핍과 심적 공허가 드러나는 공간이 되어갔다.
비슷한 상태로 하루하루 허덕이던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이 과제를 하던 중에 그 주제가 너무나 어려웠고, 참고 논문은 읽는 즉시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이렇게 시간을 들여 백날 읽어 봐야 또 수업시간이 되면 아무 대답도 못할 텐데, 내가 공부를 하는 게 맞을까? 대학원을 이렇게 다니는 게 맞나? 그럼 내가 졸업은 할 수 있을까? … 그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내가 왜 여기에 있게 됐지, 라는 근원적 의문에 도달해버렸다.
그래서 결심했다. 할 수 없는 것들에 지칠 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그렇게 떠올린 게 과제가 아닌 글쓰기고, 더 이상 미루기가 싫어 학교 가는 길에 브런치 어플을 켰다. 항상 과제에 밀려 뒷전이었던 ’내‘ 글을 드디어 시작해보려 한다. 거창할 필요 없이, 전공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난 진솔한 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목표도 다잡아보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목표가 될 것이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들은
1) 어째서 대학원생이 되었는가
2) 제멋대로 즐거운 공부
3) 30대에 공부를 한다는 것은
4) 막연한 미래
정도가 될 예정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글 쓰기 근육이 붙는다면 차후에는 더 본질적인 주제들에 대한 시리즈를 이어나갈 것이며, 이 주제들은 이번 시리즈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들 중에 고를 예정이다.
이제 지하철 문이 열린다. 그럼 오늘도 힘내서 무지의 황야를 달려봐야지. 딱 오늘치만큼만 덜 무지스러워질 수 있기를 바라며
등굣길에, 미라이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