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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i Jan 13. 2023

노화는 삶의 다른 이름이다.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을 읽고

노화라는 단어가 나에게 처음 찾아온 날은 스물 다섯살의 어느 날, 극심한 안구건조증으로 찾아간 안과에서 내가 겪는 증상이 노화의 일환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다.

이십대에 노화가 웬 말인가 싶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애초에 내 장기의 성장은 스무살에 진입했을 무렵이면 거의 완료가 되었을 것이고, 그 이후에는 현상 유지가 목적이 되는 노화의 길을 걷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20대는 충분히 노화가 시작될 수 있는 나이였다. '나이듦'이 꼭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날로 부터 또 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만큼 나이들었고, 그리고 언젠가는 (살아있다면) 노인이 될 것을 안다. 이 모든 과정은 누구나에게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나이가 들어가는 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이 '나이듦'을 지혜롭게 겪어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만약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남은 삶의 길잡이로 추천하고 싶다. '웰에이징(well-aging)'을 화두로 삼고 있는 이 책은 과연 어떻게 하면 단어 그대로의 뜻과 같이 '잘 나이드는' 삶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장 빼놓기 어려울만큼 좋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내 생각을 재구성하기 위해서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어 네 가지로 주제를 잡아 보았다.

나의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사회적 연결을 만들고 유지하기

자기효능감

노년을 보낼 공간의 형태


이를 중심으로 내 생각을 덧대어 나름의 리스폰스 페이퍼(response paper)를 작성해보려 한다.

(쓰다 보니 내 생각이 온갖데로 튀어나갈 듯 하지만, 어떻게든 써 보는 것이 목적이니 미리 양해를 구한다.)




기분 정의하기

"정서를 정확하게 구별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뇌가 더 적절하고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본문 p. 116)


정서(혹은 감정)를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여 세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적응과 공감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알고 있는 어휘가 많을 수록 더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짜증난다'는 감정도 한 가지가 아니라 '진상 손님을 만났을 때의 감정'이나 '비 맞고 뛰어왔는데 건물 들어서자 마자 비가 그쳤을 때의 감정'으로 더 세분화할 수 있다. 만일 어느 작품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겪는 인물이 등장한다면 우리는 그 인물에 빗대어 감정을 설명할 수도 있다. 책에서 역시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등의 배움에 대해 언급하는데, 학습을 통해 표현력이 증대되고 공감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최근에 친구가 공유해준 글에서 소설을 많이 읽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의해 실제 경험할 수 있는 정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 다양한 입장을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분을 정의하는 것은 나의 뇌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 유용하다. 그리고 구체적인 기분을 정의하기 위해 학습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곧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되고, 공감이 가능해진다.



헬퍼즈 하이 Helper's High

"남을 도와줄 때 느끼는 헬퍼즈 하이 Helper's High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따뜻함을 건네고, 도와주는 것은 당장의 호혜적인 이익이 없더라도 나의 뇌가 바로 그 보상을 해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 (본문 p.152)


사람에게 사회적인 기능이 생존에 중요할 수 밖에 없었던 만큼, 뇌도 '상호 작용'이 중요하도록 설계되어 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시간동안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는다면 지루함을 느껴 견딜 수 없고, 내가 만드는 자극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지루하거나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는 상태는 '외로움'이다. 우리는 아무런 자극이나 반응이 없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결심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무기력해지고, 더 지속된다면 우울감이 찾아올 것이다. 우울감은 보이지 않지만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외로운'상태를 피하도록 사회적인 동물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회적 연결을 뻗쳐나가야 한다. 이 뻗쳐나가는 마음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될 수 있다. 나의 이익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위한 행동을 함으로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껴본 경험이 모두 있을 것이다. 수중의 돈을 털어 나보다 더 곤경에 처한 이를 도울 수 있을 때 느껴지는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과 같이 '헬퍼즈 하이'는 당장 배를 채우는 이익을 주는 것과 다른 차원으로 건강을 좋게 하는 것이다.



자기효능감

심리학자 반두라에 의하면 자기효능감은 자신이 주변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말한다. 선택과 통제, 자기효능감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정말 자유롭게 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쇠퇴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부분에서 의지하게 되고 기대게 된다. (본문 p. 177 참고)


자아에 대한 정의는 소속 혹은 직업과 일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닐 수 있다. 내가 나를 정의하는 데엔 나만의 기준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업에서 은퇴한 이후의 삶에는 이와 같은 자아 확립이 더욱 중요하다. 오랜 시간 한 조직 혹은 분야에 몸담은 사람일수록 새 환경에서의 자신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 외에 노화에 의한 은퇴가 필연적이지 않은 자아를 갖춰가는 것이 삶에서 중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자세는 자기효능감과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지위가 아닌 온전한 자기 힘으로 노화에 구애받지 않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정은 기쁨을 넘어 그 다음을 기대하고, 설레게 만든다. 이 설렘은 삶에 의욕을 줄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어느 교수님 한 분을 떠올렸다. 지난 학기에 수강한 과목 중 한 과목을 맡아주신 명예교수님이신데, 매 수업시간에 30분씩 일찍 오셔서 학생들을 위해 강의실을 직접 세팅하셨고, 수업이 끝나고도 학생들을 먼저 보내시는 세심한 교수님이셨다. 강의시간이 아니어도 단 한 번도 수업 자료 업로드가 늦는다거나 과제 결과가 늦은 적이 없을만큼 관리를 잘 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명예교수가 되시고 학교에서 맡은 수업 수는 적어지셨지만 교수님께서는 꾸준히 학회를 살피시고, 개발도상국의 대학 강의에 참여하시는 등 교수님이 하실 수 있는 역할들을 사회에서 찾아서 수행하고 계셨다. 그 강의실에 앉아있는 그 누구보다도 교수님은 연세가 많으셨지만 교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혼자서 해내시는 역할들이 많은 분이셨다.

어떻게 하면 교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을지 궁금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성실한 삶을 바탕으로 단단한 자아를 확립하셨고, 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자기효능감을 실현해나가는 분이셨던 것이다.



커뮤니티와 공간

어떻게 사는 게 정답이라고 제시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적인 시각도, 개인적인 가치도 모두 달라졌다. 혼자 계속 살 수도 있고 친구와 둘이 살 수도 있다. 나이들어서 친한 친구 몇몇이 모여 사는 형태도 있다. 함께 집을 공유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모여서 커뮤니티를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과 뚝 떨어져 살기는 어렵다. 젊을 때부터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주변에 이웃을 이루고 사는 모습도 보인다. (본문 p. 161)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스로 커뮤니티를 찾아다니거나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 사람들과의 친목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 모임에 가입했다면 총무와 같은 직책도 담당해야 하고 함께 봉사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남들이 불러줄때까지 꼼짝 않고 있다거나, 남들이 모임을 만들어주기만을 기다려서는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건 불가능하다. (본문 p. 159)


넷플릭스 <그레이스 앤 프랭키>

문득 지난 해에 인상깊게 본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가 생각났다. 환갑이 넘는 시간동안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성이 집을 점유하기 위해 원치 않은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한 집에 살면서 끊임 없이 상호작용을 하다 보니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한다. 두 사람은 매우 다르지만 비슷한 나이인만큼 신체적 쇠퇴를 겪는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각자 더 나은 부분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그들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서로의 돈독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나이가 많아지다 보면 흐르는 시간 중에 주변이 변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에 따라 새로운 가족의 형태들도 생겨난다. 사별을 할 수도 있도, 졸혼을 할 수도 있다. 사회적인 역할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역할 역시 새롭게 정의해야 할 때가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이듦을 준비함에 있어서 스스로의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로 커뮤니티 참여가 있을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각 조직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온라인 친구도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지만 가능하다면 신체적 여건이 되는 한에서 접촉할 수 있도록 인근에서 활동을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활성화되는 데에는 도시의 역할이 크다. 언젠가 북유럽을 여행했을 때 이와 같은 점을 크게 실감했었다. 복지가 좋다고 알려진 만큼 대부분 도시에서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접근성이 굉장히 좋았다. 무료로 진행되는 전시도 많아서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예술 작품을 관람하고 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도 노인 분들의 비율이 꽤 높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한 눈에 보아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모두 단정한 차림으로 미술관에 오셨고, 예술 앞에서 눈을 반짝이셨다. 그런 모습은 외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모두 건강해보였다.

다른 커뮤니티에 대한 예로 에어비앤비가 있다. 그 도시에 머물 당시 나는 에어비앤비로 방을 빌려 쓰고 있었다. 숙소의 주인은 아주 고령의 여자분이셨는데, 병원 스케줄로 인해 휴대폰 알람을 맞추는 것을 어려워하셔서 내가 도와드린 것을 계기로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 날은 당신의 공간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초대를 해주시기도 했고, 내가 묵는 공간 외의 집 구경을 시켜주시기도 했다. 일흔이 넘은 분이셨지만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시고 또 한참 어린 나와 대화하는 것 역시 좋아하셨다. 휴대폰의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데에도 거부감이 없으셨고, 나의 디지털 카메라에도 관심을 가지셔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행 중 내가 본 어르신들은 결코 젊은 분들이 아니셨다. 몸의 일부가 불편하신 분들도 계셨고, 집 주인 할머니도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 치료를 받고 계셨다. 하지만 그분들은 모두 일상을 아름답게 보내고 계셨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분들이 그만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복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복지는 꼭 노인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도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거주하는 도시 안에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지난 해 나는 30대로서 첫 해를 보냈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고 소속도 바뀌면서 3으로 시작하는 이번 10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스무살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는데, 그 때는 막연히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당장의 10년을 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삶을 살아보면서 당장의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훨씬 더 나중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책을 선물해 주신 교수님께서는 부모님께 추천해드리라고 하셨지만 서른살의 내게도 좋은 책이다. 근래 계속해서 생각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기 때문인지 '잘 나이드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 너무나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몇 살이든 살아있다면 삶은 지속되고,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인 삶을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은 항상 중요하다.


스톡홀름의 공원묘지 Skogskyrkogården


스톡홀름에 갔을 때 어느 공원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묘지라기엔 공원같았고, 공원이긴 한데 묘지가 맞기는 했다. 사람들은 추모를 위해서 방문하기도 했지만 일상을 보내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는 모습이었다. 초원과 하늘은 푸르렀고, 공원 내의 조형 요소는 눈 앞의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기에 최적화된 형태들이었다.

낮은 능선을 걸으며 묘지와 휴식하는 사람들이 함께 보였다. 나는 목적 없이 공원을 걸어 다니며 생각했다. 삶과 죽음은 어쩌면 이렇게나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멈추지 않지만 언제든 죽음은 가까이에 있는 것, 그러니 삶을 소중히 여기고 올바른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그러니 언제든 삶에 대한 기대를 하고 일상을 소중히 살아가야겠다.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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