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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Nov 18. 2022

독박 육아를 대하는 태도

남편이 출장을 갔다. 이번에는 프랑스로 열흘 간 다녀온다고 한다. 즉 나의 독박 육아는 총열흘을 선고받았다 탕탕탕!


경험 상 독박 육아의 관건은 주어진 에너지를 얼마나 잘 비축하느냐이다. 육퇴 전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장기적으로 보면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필히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가 조금씩만 새어 나가야 한다. 풍선에 뚫린 작은 구멍 사이로 바람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과 유사하면 좋다. 행여나 구멍이 커져서 단번에 바람이 빠지지 않게 주의하자. 허나 괜찮다. 재빨리 카페인 수혈을 한다면 견딜 만(?)할 것이다. “펑”하고 터져버리면 낭패다. 터져버린 풍선은 복구가 어려운데. 버럭 화가 표출되는 순간 나와 아이들은 힘들어진다. 감정이란 녀석은 한 공간에 머물면 침식되기 때문이다.


나에겐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화가 난 순간,

그 공간을 당장 박차고 나가 바람을 쐰다.


이건 우리 자매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언니랑 자취하던 시절, 우리는 싸운 후 그렇게 눈치 게임을 해댔다. 본인이 나가겠다고 말이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내가 선수를 친다. 그러자 언니는 반사적으로 말한다.
“아니 이 밤에 어딜 나가, 차라리 내가 나갈게” 나를 위하는 척하며 이기려는 속셈이다.
“됐어, 내가 나간다니까”


서로 문 앞에서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언니가 나가버렸다. 패배했다. 우리는 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자가 감정을 잘 컨트롤하고 돌아온다는 것을. 공간을 이동해 노래를 듣고 산책을 하면 신기하게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을. 역시나 언니는 돌아와서 미안하다며 손을 내밀었고 기분도 나아 보였다. 나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화나네?) 아무튼 싸운 공간에 남겨지면 왜 그리 지는 느낌이 들었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말이다.


동굴로 들어간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춥거나, 혹은 나가긴 귀찮을 때 쓰는 방법이다.

방문을 쾅 닫으며(수동 공격적으로 내가 화났다는 표현을 해본다. 다만 엄마 앞에서 하면 등짝 맞을 수도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침대 속으로 쏙 들어간다. 책을 들고 이불속으로 들어가지만 결국 핸드폰을 잡는다. 유튜브를 보고 쇼핑도 좀 하다가 한숨 자기라도 하면 언제 싸웠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아진다. 화를 식히기에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다.  



그런데  독박이란 녀석을 만나면 이런 방법이 도통 통하질 않는다. 혼자 육아를 하다 화가 난다고 해서 도망을 갈 수도 동굴로 들어갈 수도 없지 않은가? 

나는 집을 비울 수도, 혼자 잠을 청할 수도 없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 관리다. 육체와 정신은 상호보완적이라서 한쪽이 약해지면 나머지도 와르르 무너진다. 체력이 곧 멘탈이라는 말인데, 나는 나의 비루한 체력을 아주 잘 안다. 아이들과 에버랜드라도 다녀온 다음 날이면 끙끙 앓는 저질 체력이란 것을. 고로 에너지가 세어 날 구멍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남편이 떠난 집에 아이들 픽업과 동시에 순살치킨 한 마리를 포장해 들어온다. 내 남은 주말 독박의 에너지를 세이브하고자 일 수도 있고 그저 밥하기 싫어서 일수도 있다. 엄마들은 알 것이다. (후자에 가깝다는 것을)

금요일 밤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무비 나잇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도 우리도 즐기자는 취지에서 만든 날인데 첫째 딸은 금요일만 되면 모아 온 용돈으로 학원 앞 슈퍼에서 팝콘을 사 온다. 영화 보면서 먹기 위해서 라는데 그 정도로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보통은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킨 후 영화를 틀어주는데, 오늘은.... 에라 모르겠다. 그냥 옷만 갈아입고 치킨 먹으며 영화를 보기로 했고, 나도 애들 옆에서 치맥을 즐겼다. 간만에 시킨 페리카나 양념치킨이 너무 맛나서 놀랐다. 

페리카나 후라이드 반 양념 반 치킨


약간 감동적인 맛이다. 역시 양념치킨은 페리카나가 진리인 것인가를 인스타에 올리며 맥주를 홀짝홀짝 마신다.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에이, 독박 육아 별거 없네.'

남은 나날도 오늘처럼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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