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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옹지마 Jan 18. 2023

이제 정말 퇴근하겠습니다.(1)

나는 안내원이 되었습니다.

나는 작년 3월 1일부터 나의 직장인 병원 고객지원팀에 소속돼 안내 창구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은 대학병원으로 제법 규모가 있어서 매일 3천 명이 넘는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를 위해 찾는다. 


게다가 입원환자도 700명이나 되니 입원환자 보호자까지 합치면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수는 하루만 해도 족히 5천 명을 넘는다.


이렇다 보니 내가 하루 동안 상대해야 할 고객도 평균 500명이나 된다. 


숫자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매일매일을 정신없게 보내야 했다. 


늘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그동안의 홍보업무와 달리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다소 단순한 업무는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일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혼란스럽지만 코로나19 시대를 겪는 이 판국에 지금 당장 그만둘 수도 없는 이 상황은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지난 이십 년 동안 해온 홍보는 정말로 즐겁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며 해온 일이었다.


십 년 전, 이 병원은 홍보를 강화하고자 나를 스카우트했다.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65일 24시간 병원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할 정도 정말 열심히 일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과 아들도 “아빠는 휴가 중에도 병원만 생각하냐”라고 타박할 정도로 진심으로 병원을 사랑하고 목표 실현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기자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어딜 가든 병원에 적용시킬 수 있는 홍보물이나 사인물이라도 발견하면 꼼꼼하게 적고 사진으로 담아 오는 것은 몸에 밴 습관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병원에서 많은 것을 바꾸었다.


입사 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교수진의 실력 등 병원 치료 수준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지인들에게조차도 추천하지 않을 정도로 패배주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 원인으로 직원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업그레이드된 현재 교수진의 실력 및 의술의 수준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전 진료과 과장과의 1대 1 미팅을 통해 해당 진료과의 우수성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어 병원의 그룹웨어를 활용해 교직원 대상 병원 바로 알기 퀴즈 진행, 신규직원 CS 교육 시 병원의 우수성 소개, 우수한 의술 및 진료 실적에 대한 보도자료 배포 전 교직원들에게 먼저 공개함으로써 병원 소식을 전 직원이 함께 공유하며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 시민들의 인지도 부족이었다.


한 지역에서 그것도 한 자리에서 5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병원임에도 특히 잠재고객인 20대 이하의 젊은 층에서는 병원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대전지역 최초의 대학병원임에도 여전히 종합병원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홍보 마인드가 거의 없었던 경영진을 3년 동안 끈질기게 설득해 버스광고, 지하철 광고 등의 옥외광고를 시행한 것은 물론, 지역 연고 프로스포츠 구단과 협약을 통해 의료지원을 하는 대신에 경기장 내 광고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대학병원으로서의 ‘중증질환 치료 잘하는 전문화된 대학병원’이라는 브랜드 포지셔닝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언론홍보 강화를 위해 언론사와의 관계 개선과 획기적인 보도자료 아이템 발굴 등 왕성한 언론홍보 활동으로 년 300건 정도의 보도 건수를 연평균 1천600건까지 증가시켰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 홍보 강화를 위해 네이버 포스트 및 블로그를 개설해 10만 조회 수를 달성했으며, 대전지역 최초로 모바일 홈페이지를 개설해 병원 이용자 편의를 도모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입사 당시 네이버 검색창 관련 검색어로 노출조차 없었던 병원 이름을 가장 먼저 검색되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병원의 인지도를 높였다.


게다가 지역병원들의 비보험 검사비를 전수 조사해 다른 병원과 비교해 우리 병원이 최대 30%의 검사비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 이를 개선시키기도 했다. 


이는 한해만 해도 10억은 족히 넘는 금액이었다.


소아과의 경우, 소아 환자의 가장 많은 질환인 호흡기 질환을 다섯 명의 교수 중 한 명만 진료분야에 표기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과장을 만나 이를 수정시키기도 했다. 

  

365일, 24시간 휴대폰을 지니고 살아야 할 정도로 긴장 속에 살아야 하는 홍보인.


기사 한 줄에 울고 웃다 보니 다중인격이 되고,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탓에 ‘벙어리 냉가슴’이란 병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병원의 꿈을 팔고, 그 꿈을 먹고사는 홍보는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나는 살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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