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에 날벼락
기사 한 줄에 울고 웃다 보니 다중인격이 되고,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탓에 ‘벙어리 냉가슴’이란 병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병원의 꿈을 팔고, 그 꿈을 먹고사는 홍보는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계속>
2021년 2월 21 일요일 저녁. "문자 왔숑, 문자 왔숑" 딸아이가 바꿔놓은 문자도착 알람이 울렸다.
‘다 늦은 일요일 저녁에 무슨 문자일까?’
핸드폰 화면을 켜보니 발신번호가 병원장 부속실이다.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각 부서장 대상 병원장님 면담이 있을 예정이니, 이메일로 보내드린 일정을 확인하셔서 5분 전 부속실에 대기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뭐가 그리 급하기에 쉬는 일요일 저녁에 문자를 보냈을까?’
사실 병원 안에는 며칠 전부터 3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피바람 부는 정기인사가 있다는 둥, 벌써 누구누구는 시설팀으로 간다는 둥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인사철에는 의례 이런 소문이 나돌기 마련이니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인사를 코앞에 두고 전에 없던 병원장님과의 면담 소식은 왠지 모를 불안한 기운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 홍보팀장으로 10년을 보내는 나는 매년 벌어지는 이런 소문은 남의 일처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한 데는 다른 대학병원 홍보팀에서 십 년을 일하던 중에 이 병원으로 스카우트 돼 왔기 때문이다.
출근하자마자 면담순서를 확인하기 위해 이메일을 확인했다.
9시 20분, 세 번째 순서였다.
부속실 소파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렸다. 잠시 후 내 앞순서였던 기획팀장이 병원장 문을 열고 나왔다.
“뭐라셔?” 나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별말씀 없으시던데요?”라고 별일이 없었다는 듯 답을 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함께 "피식"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병원장실 문을 열기 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똑 똑 똑’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문에 귀를 갖다 대자 병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서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병원장님은 원탁 테이블에 앉아 손을 반쯤 뻗어 의자를 가리켰다.
“어서 와요, 홍보팀장, 앉으세요.”
일주일에도 결재나 보고 등의 이유로 몇 번씩 드나드는 병원장실이었지만 전에 없었던 긴장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긴장감을 달래기 위해 병원장님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낮고 긴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요즘, 힘든 일 없나요?” 병원장님의 가벼운 안부로 대화가 시작됐다.
“네, 없습니다.”
“음. 홍보팀장, 홍보팀에 얼마나 있었지?”
“아. 네 만 9년 정도 됐습니다.”
“음. 그렇군.”
병원장님은 잠시 뜸을 들이시더니 말을 이어갔다.
“홍보팀장, 이번에는 CS팀에서 일해 보는 게 좋겠네.”
“네? CS팀이요?”
CS팀이라니.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래. CS팀에 가서 다른 부서 경험도 해보고 환자경험평가도 신경 좀 잘 써줬으면 좋겠어.”
“그럼, 이미영 CS팀장은요?”
이렇게 물은 이유는 순간적으로 감지된 찝찝한 느낌 때문이었다.
“이 팀장은 다른 부서로 옮길 거야.”
“아. 그리고 원무팀 김영권 팀장도 CS팀으로 발령 날 거야.”
“그리고 김영권 팀장이 팀장을 맡게 될 거야.”
의식은 머리를 둔탁한 무언가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은 경직됐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떠도는 소문이 나였다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몇 번을 되뇌니 눈앞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