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긋 Sep 11. 2023

21.06.18 오늘의 풀무질

우리가 꽂고 싶은 책, 보여주고 싶은 책을 넣기로 했다.

책 주문은 항상 골치아프다. 신간을 꼬박꼬박 확인하기는 하지만 들여놓는 횟수는 현저하게 떨어졌다. 베스트셀러도 한참의 고민이 필요하다. 1년쯤 카운터를 지키고 매주 도서발주를 넣다보니 풀무질을 이용해주시는 분들의 선호도가 대강 눈에 들어온다. 눈에는 들어오는데 분석이 안된다. 예측해서 들여놓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건 알겠다. 절대로 같은 책이 연달아 팔리지 않는다. 그만큼 방문하시는 분들의 성향이 편차가 심하다.


장사의 첫번째는 타겟 설정이다. 장사를 시작하고 자리잡으려면 3년은 두고봐야 한단 말이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다. 풀무질도 목표 고객 설정하는데 한 세월이 걸렸고, 아직도 방황 중이다. 대학생, 인문학도, 관광객, 인스타그래머, 활동가, 비건까지 숱한 목표를 설정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예측은 번번이 빗나가고 손님들은 언제나 뜻대로 하신다. 뜻대로 하신다,는 말이 재밌다. 누구누구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정작 의도하지 않았을 때,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안착한다. 물론 우리는 그 예기치 못한 부분들을 절대 알 수 없다. 어쩌다보니 마음에 들어버린 우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어떤 책을 넣어두어야 하나, 우리가 꽂고 싶은 책, 보여주고 싶은 책을 넣기로 했다. 우리를 마음에 들어하시는 분들이라면 우리가 마음에 드는 책도 마음에 들어해주시지 않을까라는 알량한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인 머릿수와 그에 따른 취향의 가짓수를 믿는 마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을 두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팔릴 만한 책을 넣어두는 것도 좋지만, 팔렸으면 하는 책도 함께 두면 같이 가져가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오늘도 서점 누리집들을 돌아다니며 세상에 나온 여러 책들을 뒤져본다. 풀무질을 다녀간 한 분 한 분, 그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되새기며 뒤적거려도 결국 풀무질에 꽂힐 책은 애초에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그게 아쉬워서 뒤적이기를 멈출 수 없다. 타겟을 설정하는 게 어렵다고 했는데, 풀무질의 진짜 타겟은 모든 사람들이다. 모든 이가 풀무질에 들어와서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을 품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만 한다면 어떤 책을 팔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23.08.25 오늘의 풀무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