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년 만의 영국, 런던이다.
영국 한달살이를 마음먹고, 도서관에서 영국 관련 책을 뒤졌다.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싶은 책들을 읽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책 한 권 뚝딱 쓰겠다 할 정도의 의지가 불탄다. 책장 구석에 새초롬히 놓여있는 먼지 묻은 키보드를 꺼내 전투적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생각에 꼬리를 문 단어들을 정렬하고, 정성스레 손가락으로 옮기려는 순간, 불현듯.. 그런데 말이야. 과연 내 글을 누가 보겠어?.. 방금까지 불타오르던 나의 의지는 자신감을 상실해 쭈뼛쭈뼛한 손가락 속에 숨어버린다. 썼다, 지웠다의 무한 굴레. 이제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다.
나는 참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내 속에 꾹꾹 담겨 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좀 나가달란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척 이렇게 손가락으로, 글로 풀어내고자 한다. 나처럼 아직도 뭔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젤 먼저 책을 찾아보는 사람이 몇 명은 있겠지. 온갖 영상과 AI의 신속함이 고군분투하는 이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식 낭만주의에 대한 로망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함께..
10년 만의 영국, 런던이다. 나의 첫 영국 여행은 21살, 대학생 때였다.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잠깐 했던 여행이 마지막일 것 같았던 나의 런던과의 인연은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외항사 특유의 위치상, 런던으로의 비행이 많았던 탓에, 그땐 그저 인천에서 서울 가듯 런던을 자주 갔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 그 10년 전이 마지막 런던이 될 줄이야.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 나 스스로도 낯선 내가 되어 버린 지금. 어디 한번 그 젊은 날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런던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그것도 사내아이 하나 데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10년이 지난, 런던은 어떤 모습일까. 나이와 걱정은 비례라도 하는 건지,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를 하고자 마음먹으면, 설렘도 잠시, 걱정과 두려움이 먼저 엄습해 오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온전히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일까 ? 14시간이라는 비행시간이 주는 한국과의 거리에서 오는 위치적 부담감 때문일까?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엔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던, 걱정의 무게가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MBTI에서 P(무계획적)였던 젊은 날의 내가 이제는 J(계획적) 아줌마가 되어, 아이와의 런던 한달살이를 준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