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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킴 Aug 22. 2023

2 아이와 영국에 한 달 다녀올게요.

2. 나의 그 해 여름. 뜻밖의 런던.

  나의 첫 런던 풍경은 어땠더라?


  생각해 보면 살면서 가장 눈부셨던 그 해 여름이었다. 나의 꽃다운 21살.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한 달 전. 아일랜드 바로 옆 나라. 영국 웨일스에서 워크캠프라는 봉사활동을 했었다. 2주 동안 스완시(Swansea)라는 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한 학교를 위해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마을인 만큼 사람들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친절했다.  봉사활동을 잘 마치고, 그 소중한 추억들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이런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 스스로를 감탄하며 스완시(Swansea) 역에서 카디프(Cardiff: 웨일스의 수도) 역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기차에는 승객들이 많지 않았고,  동양인 여자는 나 혼자였다. 기차와 기차 사이 짐 놓는 곳이 따로 있었기에, 다른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캐리어(슈트케이스)를 그 짐 칸에 잘 앉혀놓고 나도 내 좌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1시간 반이면 카디프 역에 도착하고, 카디프 역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간 후에, 이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면 나의 긴 외국생활 여정이 잘 마무리되려던 순간이었다.


  카디프(Cardiff) 역 도착. 웨일스 고마웠어 이제 안녕.. 어? 그런데.. 짐 칸에 두웠던 나의 캐리어(슈트케이스)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기차 앞 뒤를 왔다 갔다 하며 내 캐리어를 찾아본다. 없다. 짐 칸에서 내 짐이 사라졌다. 머리가 하얘지고  귀가 먹먹하다. 무슨 일이지? 기차는 곧 다른 역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기차에서 내려 역무원에게 달려갔다. “I‘ve lost my suitcase”(내 짐을 잃어버렸어요.) 말보다도 눈물이 먼저 나온다. 그 캐리어(슈트케이스)에는 2주 동안의 나의 예쁜 추억들이 꼭꼭 담겨 있었다. 친구들 선물, 편지, 연락처, 사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여권! 이럴 수가. 여권이 없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역무원들은 당장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캐리어를 찾으면 연락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도둑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눈이 퉁퉁 부어서는 카디프 경찰서로 갔다. 사건을 접수했지만 경찰들도 찾기 힘들 거라고 미안하다고 한다. 볼 것 없는 동양인 여자애가 잃어버린 짐 하나를 찾기 위해 이 사람들이 큰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이 안 보인다. 이렇게 하늘이 무너지나?.. 지금 돌아보면, 그때 처음,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세상살이의 냉정함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웨일스의 예쁜 한 조각 추억의 그림이 한순간에 검은 물감으로 뿌옇게 번졌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여권을 다시 발급받아야 했다. 그런데, 한국 대사관은 런던에 있다. 카디프역에서 바로 런던행 기차에 올랐다. 그렇게 뜻밖에 도착한 나의 첫 런던은 내 마음처럼 흐드러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후, 런던 한국대사관에서 한 달짜리 긴급여권을 발급받았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참으로 슬픈 그 해 여름. 나의 런던 인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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