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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Mar 23. 2024

잃어버린 자물쇠와 SD카드

정신 차려. 혼자야. 행복회로 풀가동해.


인턴 생활을 3월에 마치고, 출발하기 전까지 대략적인 일정과 주요 교통편을 예매했다. 스위스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인생에 언제 스위스에 가보겠나?' 싶은 마음에 결국 일정에 포함시켰다. (이 결정은 추후 여행 경비 관리에 있어서 큰 시련으로 다가오게 된다.)


여행 떠나기 전, 독일에 사는 친구와 통화하며 적은 독일 여행 계획


49일간 유럽을 여행하려니 800만 원이 결코 많은 돈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숙소비를 최대한 아끼고자 거의 모든 숙소를 2만 원대의 도미토리로 예약했다. 그중엔 남녀 혼성 도미토리도 있었는데.. 이 경험 역시 여행 에피소드에서 빼놓을 수 없을 거다.


각 나라를 오갈 교통편과 숙소, 왕복 비행기를 모두 예약하고 결제를 마치자 이제 남은 건 짐을 싸서 출발하는 일뿐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출발하기 전날 밤이나 당일 아침에 짐을 싸기 시작하는데, 혼자 가는 장기 여행은 처음이라 일주일 전부터 짐을 챙겼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신청한 유심을 찾고 약국으로 가 필요할 것 같은 약을 모조리 샀다. 해열제, 종합감기약, 지사제, 멀미약.. 약값으로만 총 10만 원이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왜 거기에서는 절약하지 않았나 의문이 들 텐데, 그때는 공항 약값이 그렇게 비싼 줄도 몰랐고 내가 그렇게 약을 많이 살 줄도 몰랐다.


사실 나는 2년 전 친구와 3주간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그때는 둘이서 정신없이 돌아다녔는데, 이번에는 나 혼자 오롯이 여행을 하는 거라 감회가 남달랐다. 둘이 여행할 때는 이런 건 다 나눠서 가져갔는데. 혼자 여행하니 오히려 짐이 많아졌다. 점점 커져가는 가방의 크기를 보며 '나 겁이 많았구나', 싶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생각하고 체크인을 하는데 앞에 단체손님이 계셔서 한 시간을 족히 넘게 대기하고 표를 끊었다. 그렇게 긴 대기는 처음이라 혹시 비행기를 놓치진 않을까 긴장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수화물로 짐을 하나 부쳐야 했는데, 3년 전 영국 여행 때 캐리어가 파손된 적이 있어서 과연 무사히 잘 도착할지 걱정도 됐다.



그렇게 나의 첫 홀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원래 비행기만 타면 옆 자리 친구가 서운해할 정도로 잠만 자는 편인데, 왠지 이번 여행에서는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덕분에 미리 다운받아 둔 셜록 드라마 시리즈를 쭉 정주행 할 수 있었다. 내가 탑승한 LOT는 항공기 뒤편에서 선착순에 무료로 미니 컵라면을 가져갈 수 있었는데, 한 발 늦는 바람에 냄새만 맡고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정말 아쉬웠나 보다.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에서 갈아탄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는 정말 작아서 깜짝 놀랐다. 마치 경비행기 같달까. 양 날개에 프로펠러가 달린 비행기였다. 게다가 하필 그날 궂은 비까지 와서 비행기가 울렁울렁 흔들렸다. 눈을 감고 다시금 되새겼다.


'살 사람은 살아!'



드디어 첫 여행지인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비 오는 애매한 봄날씨 속에서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40분 정도 지나 시내에 도착했고,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로 향했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 왠지 낯선 거리에 대한 긴장감도,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설렘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처음 오는 나라에 처음 밟는 거리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이상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숙소 : Maverick City Lodge Hostel


간단하게 짐을 풀기 위해 배정된 도미토리 룸으로 들어갔다. 예상한 것보다 숙소가 깔끔하고, 도미토리 침대도 넓었다. 침대마다 커튼도 있어서, 혼성 도미토리였지만 개인적인 공간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간단하게 짐을 정리하는데.. 자물쇠와 SD카드가 들어있던 작은 가방이 사라져 있었다! (도미토리는 보통 개인 캐비닛이 주어지는데, 이때 개인 자물쇠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혹시 내가 안 챙겨 왔나 싶어 급하게 어머니께 보이스톡을 걸었는데, 방에도 없다고 하신다. 자전거 자물쇠를 하나 더 챙겨 와서 다행이었다.


첫날부터 시련이 시작된 것인가?


이럴 때일수록 긍정회로를 풀가동 해야만 한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자물쇠도 살 겸 샴푸, 바디워시 등 필요한 생필품을 사러 나갔다.


길거리 야시장 : Karavan - street food


첫날은 숙소 근처를 살짝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가볍게 시작했다. 유럽 특유의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이제야 실감이 나는 듯했다. 주변에서 들리는 동유럽 언어의 익숙하지 않은 억양도 한몫했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 혼자 세운 하나의 약속이 있었다.


'밤이 늦으면 숙소로 돌아가기.'


파리에서 호되게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던 터라, 깜깜한 밤에 혼자 다니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 싶은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험을 줄이고자 만든 약속이었다. 야경을 많이 못 봐서 아쉽긴 했지만, 덕분에 아침 일찍 다니기도 했고 해가 길었던 때여서 꽤 늦은 시간까지 밝았던 기억이 있다.


간단하게 쇼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온 여행자들이 하나둘 모여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정말 외국이구나. 정말 혼자 왔구나. 싶었다. 이게 여행의 묘미지.


콘센트가 가장 많은 숙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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