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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elle Feb 03. 2023

지극히 사적인 뉴욕 이야기

04 - 한결같음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똑같은 것.' 말이야 쉽지만, 실행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것이 아니지 싶다. 그동안 뉴욕에서 학생으로서, 디자이너로서 살아가면서 참 많은 경험들을 했고, 그에 따른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옮겨 적어서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 나의 하나의 장기 목표 중 하나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들로 글쓰기를 소홀히 한 것 같다. 오랫동안 글 쓰는 것을 쉬다 보니 다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 막상 글을 쓰려하니 생각만큼 잘 표현이 되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했던 나날들. 취미로 시작한 것이 일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만큼 당황스러운 일이 없지 않을까. 굳이 다른 사람이 값어치를 매기거나 하는 것이 아닌데도, 왜 그동안 어렸을 적 내가 제일 좋아하던 글 쓰기가 두렵게 느껴졌던 것일까.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렸을 적보다 덜 주체적으로 자라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실망하기도 했다. 타인의 조언은 경청하되 그렇다고 너무 그들의 의견에 좌지우지되지 말자고 혼자 오늘도 다짐한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것도, 디자인을 하는 것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니 특정한 해답 없이 나만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 나가야 하는 어찌 보면 참으로 당찬 직업이다. 어떨 때는 너무나도 답답해서 누군가가 속 시원하게 나에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으면 하는 게으른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나는 나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든 한결같이 써 내려가면, 배워가면, 발전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이렇게 조금이나마 내 목표에 다가가고자 한다.


    한결같다는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은 뉴욕의 오래된 책방들이다. 번지르르하게 커피숍까지 딸려있는 체인 서점들이 아닌, 고서적이나 여기저기 접히고 밑줄 그어진, 빛바랜 천 덮개의 헌책들을 파는 오래된 책방들. 무겁고 삐걱 거리는 문을 온몸으로 밀어서 들어가면 형용할 수는 없지만, 세계 어디를 가나 익숙한 쿰쿰한 책과 먼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런 책방들. 오래되었지만 변함없이 따뜻한 주황빛의 조명, 오래된 검붉은 진한 호두나무 책장 사이사이 그 안의 조용하지만 치열했던 삶의 흔적에 생긴 흠집들, 군데군데 푸른 녹이 쓴 금빛 사인들, 나보다 한참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접이식 사다리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이런저런 주제들의 책들. 간혹 생각이 많아질 때에 나는 헌책방에 간다. 이곳에 오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거리의 사람들도, 도시의 소음들도, 갈피 없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내 생각들도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서 책방 한 모퉁이에 앉아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볼 때가 나는 참 좋다. 세월이 흘러 참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책방에서는 한국에 살았었던 중학생 때의 나도, 지금 뉴욕에 있는 20대의 나도 그저 한결같은 책벌레다. 그곳이 보수동 책방 골목이었든, 뉴욕 어퍼이스트의 어느 책방이든, 책을 읽으면서 울기도, 웃기도, 꿈을 꾸기도 했던 그때와 지금의 나.


    내 주변의 대부분의 것들은 많은 변화들을 거쳤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서 꿈에서만 볼 수 있는 할머니댁의 모습들도, 어렸을 때 뛰어놀았던 동네의 모습들도, 모두 지금은 다시 가도 볼 수 도 없고, 내 기억에만 의존해야 하는 곳들이라 더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나 싶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서 그 대상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글로써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영원히, 한결같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나 싶다. 여담이지만, 실내 건축 디자인을 할 때에도 (클라이언트나 주제들에 따라 결과물은 다르겠지만) 항상 나는 나무로 된 골조나 가구들이 주는 따스한 색과 살짝 그을린 듯한 향과, 오래되어 약간 빛이 바랜 옻칠을 한 원목들과, 손때 묻은 황동 손잡이들과, 그리고 만지면 차갑고 울퉁불퉁한 유리블록들과 도자기들에 눈길이 먼저 간다. 디자이너로서 나의 영감들은 크게 보면 '그리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랜 추억들이 주는 포근하고 그리운 감정들. 사람들은 실내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들의 삶의 추억의 배경이 되는 그 실내를 디자인하는 것이 나에게는 과분하지만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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