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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ipick Jan 24. 2024

#3. 안 해본 것 해보기

관성에서 벗어나기

나는 굉장히 안정적이고 익숙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새로운 상황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싫어하며 대처하는 것도 잘하지 못한다. 당황해서 얼음이 되고 바보가 되어버린다. 항상 다니는 길로만 다니며 가봤던 식당, 카페, 상점을 이용한다. 미리 정해놓은 계획대로 하는 것을 추구하며 갑자기 생기는 약속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약속은 미리 몇 주 전에 정해놓고 휴대폰 달력에 표시해놓은 다음 약속 당일까지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나와 반대의 성향인 남편이 갑자기 (지금 당장 오늘) ‘어디 나갈까?’ 그러면 마음의 반발심이 일어난다. 최소한 전날에라도 ‘우리 내일 어디 가볼까?’라고 해야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다 책 『모든 삶은 흐른다』를 읽으며 한 부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와 달리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고 싶은 말도 속 시원하게 해보자. 새로운 방식으로 먹고, 일상생활에서도 마치 여행을 온 것처럼 다녀보자. 퇴근 후 집으로 곧장 가기보다는 집 앞 작은 술집에서 맥주 한잔을 마셔보는 것도 좋다. 새로운 계획을 짜고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각을 떠올려보자.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도전하는 건 상어가 아가미로 호흡을 하는 것과 같다. 늘 같은 것을 하는 것이 만병통치가 아니다.『모든 삶은 흐른다』, p94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예전의 희미한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거의 10년 전쯤이었을까. 교사대상 연수를 듣고 있던 기억이다.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은 수업연구를 굉장히 많이 하시는 분이었고 그것들을 공유하는 연수였다. 그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조언하신 말씀이 머릿속 깊은 기억 속에서 나왔다. 출퇴근길을 매일 똑같은 길로 다니지 말고 다양한 길로 다녀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일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새로운 자극을 주고, 그러다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며 새로운 깨달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기억이 오래되어 정확하진 않지만 그 의미는 내가 읽은 책의 내용과 비슷한 의도였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이 그저 나에게 스쳐지나가는 말이었으나 10년이 지난 이제야 그 의미를 마음에 담게 되었다. 이렇게 기억의 조각들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신기하게도 의미가 통하는 경험을 하는 그 순간에 의식의 위로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은 책의 한 구절을 통해 이루어진 일이다.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익숙한 것만을 추구하며 산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아주 편하긴 하겠지만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은 없겠지. 내가 죽을 때까지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건 또 싫었다. 어느덧 책 속의 이 내용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속에서는 결심이 서기 시작했다.          

내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자는 결심이었다. 뭐가 있을까? 나는 정말 특별한 취미랄 게 하나도 없었다. 누가 나에게 취미를 물어볼까봐 괜히 혼자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할 것까지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용적이면서도 재미있고 그런...           

 

'오! 가죽공예! 좋다. '         

나는 가죽가방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방은 비쌀수록 예뻐 보인단 말이지^^ 비싼 가방을 매번 살 수는 없으니 만들어보는 건 어떨지 번뜩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주변에 가죽공방이 어디에 있는지 검색해보았다. 블로그에 홍보되어있는 몇 군데를 살펴보고 제일 마음이 가는 곳으로 연락을 했다.          


두근두근...          


비어있는 자리가 있어 원하는 날짜부터 수업이 가능했다. 첫 수업을 기다리기까지 얼마나 설레던지. ‘배움’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설레고 기다려지는 것이었던가? 취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마음이 들떴다.      

드디어 첫 수업 날이 되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인원이 나 포함 3명 정도 되었다. 첫 날은 가볍게 간단한 카드지갑을 만들어보았다. 스피커에서는 여유로운 음악이 흘러나왔고 선생님께서는 커피를 내주셨다. 그리고 친절한 설명에 따라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공방이라는 곳엘 처음 와봤는데, 처음이라 아직은 그 공간과,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색했지만 온전히 집중해내는 그 시간이 너무도 기쁨으로 가득 찬 것을 느꼈다.         


내가 다니는 공방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취미는 언제나 변함없이, 참을 수 없는 만큼 굉장한 즐거움을 선사한다.『초역 니체의 말』, p53          



수업을 이어나가면서 내가 가죽공예를 잘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지만,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계속 들었다.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무언가에 몰입하며 얻는 그 즐거움을 왜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을까?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이 취미를 시작으로 남은 인생동안 계속적으로 새로운 ‘배움’을 시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굳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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