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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union Sep 05. 2022

시민단체 회의비‧업무추진비 지출내역이 국가기밀인가요?

최근 대통령실도 영화관람비 내역 공개를 거절했던데…

우리는 한 시민단체 단일 사업장에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2021년 만들어진 우리 노조는 2022년 하반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2022년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사측과 협상이 끝나면 올해 임금 인상분에 대한 소급적용이 이뤄질 테니 그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야 그러려니 쳐도…(사실 그러려니 못 함! 분노가 차오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국가기밀 다루듯 하는 ‘우리 단체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다.




임금협상 얘기하다 갑자기 웬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냐고? 간단히 말하면 ‘회계장부 상 돈이 새는 곳이 있다면 찾아보고 노사가 함께 절약하되, 줄인 만큼은 임금 인상에 보태 보자’는 것이 우리 노조의 의견이자 제안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재정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을 우리 노조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저연차 직원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어 ‘서울시 생활임금’ 정도는 달라는 게 처음 요구하던 바이긴 하다. 연공서열제(호봉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 단체 특성상 저연차 직원에 서울시 생활임금 수준을 주면 고연차 직원 임금까지 쭉 올라가 단체 부담이 늘게 되니, 그렇다면 저연차-고연차 사이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식의 새로운 임금 체계를 도입하는 건 어떠하냐고도 제안해본 바 있다. 물론 모두 무참히 폐기됐지만.


2022년 서울형 생활임금은 10,766원이다. 출처=서울특별시 홈페이지


각설하고. 우리 노조가 살펴보길 원한 자료는 2022년 5~6월 회의비, 복리후생비, 업무추진비였다. 사실 다른 계정과목 지출내역도 다 들여다보고 절약할 곳을 찾고 싶다. 그런데 굳이 이 세 개 계정과목의 지출내역을 원한 이유는 (1) 전산유지비, 통신비 같이 아예 절약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2) 회원사업비, 교육사업비처럼 단체 존재 이유와 관련 있어 줄이자고 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 데다, 사실 이 부분이 더 중요한데 (3) 다른 계정과목에 비해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사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항목이며 (4)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확인하고 관리될 필요가 있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기록‧관리‧공개되지 않은 내역이기 때문이다. (3)에서 말한 회의비, 복리후생비, 업무추진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노조원들은 아니다.


그런데 감감무소식이다. 우리 노조는 2022년 7월 11일 진행한 9차 교섭회의에서 해당 지출내역 열람을 요청했다. 같은 해 6월 16일 7차 교섭회의(2기 교섭위원과의 첫 회의였다), 6월 30일 8차 교섭회의에서 계속 지출내역 열람 관련 논의가 오갔다. “민언련의 수입‧지출은 재무제표‧손익계산서에서 확인이 가능하나 요청하는 사항의 경우 담당 활동가에 자료 요청하고 공개할 수 있다.”(7차 교섭회의) “회계 감사 결과를 노조가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잘못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살펴보고 연 2백만 원이든 1천만 원이든 급여를 인상하는 데 활용하자고 제안해달라.”(8차 교섭회의) 이런 대화 속에서 곧 자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요청 10일 뒤, 사측 교섭위원 중 한 명이 지출 내역 자료를 주기 어렵다고 전해왔다. “교섭위원들이 주는 게 아니라 단체에서 주는 것인데 절차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공문을 먼저 보내라. 이번뿐만 아니라 자료 요구를 하면, 단체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한 뒤, 공개 방식 또한 열람을 시켜주든 원 자료를 주든 결정하겠다. 그리고 자료를 제공하면 노조활동에만 쓰인다는 동의서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를 ‘물음표 살인마’로 만드는 말이었다. 제가 노조원이라 그런 건가요? 아니면 노사 교섭 중이라서 그런 건가요? 저는 이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인데도 법인카드 지출내역을 볼 수 없나요? 비노조원일 경우 앞으로 이런 자료를 보려면 개인 명의로 공문을 보내라는 건가요? 사측 교섭위원으로 나와 교섭장에서 주겠다 한 자료라면 대표든 이사든 설득해서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그전에… 이런 절차는 언제 만드신 거예요?





‘첩첩산중’ ‘스무고개’ 같은 절차가 그때그때 만들어진다. 우리 시민단체는 그렇다. 비단 노사교섭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을 할 때도 그렇고, 노사교섭할 때도 그랬다. 절차가 만들어지는 ‘그때그때’가 언제인지도 다르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이번 법인카드 지출내역 열람 요청 같은 일)이 터진다고 새로운 절차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절차를 만들어야겠다 싶으면 만들고, 안 만들어도 되겠다 싶으면 안 만든다. 법인카드 지출내역 열람은 절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가 있었던 거다. ‘기준 그거, 만들면 뭐가 좋다고~ 안 만들어도 되겠다 싶어서 안 만들 수도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결정 권한은 위쪽에 집중돼 있고, 그들 또는 그들 중 누군가의 유불리에 따라 결정되는 게 문제다. 단체 운영 전반적으로 기준과 절차가 미흡해서 다 한번 살펴보고 뜯어고치는 것도 아니고.  


물음표 살인마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은 못 받았지만 ‘지출내역을 달라’는 공문은 보냈다. 2022년 7월 21일 당일 보냈지만 2022년 8월 7일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받은 답변은 없다. 다만 1주일 전쯤 회계 담당 직원을 통해 ‘내부자료 열람 청구 및 확인서’를 프린트한 종이 한 장을 보내온 바 있다. 열람 청구자의 개인정보를 쓰라는 내용을 보고 다소 어이가 없었으나… 그 아래 내용이 더욱…. 말잇못.


갑자기 만들어진 절차치곤 까다롭게 잘(?) 만든… 말잇못


시민단체 회의비‧업무추진비‧복리후생비 지출내역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사항인가요? 국가기밀인가요? 최근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영화관람비와 저녁식사 비용 등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안보·외교·경호와 관련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고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며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고 답변하며 거절했던데. 우리 단체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고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나요? 아, 개인 사생활을 침해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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