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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union Sep 05. 2022

'힘들 때 이야기 들어주고 해결방법 고민해주기' 모임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버겁게 느껴진다면

우리의 1 총회는 예정과 다르게  골목길에서 열렸다. 그날 찍은 사진  노조원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 총회 장소가 '교육관'이라고 너무 선명하게 적혀 있어 웃퍼 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열릴 고생길의 예고편 같긴 하지만, 적어도  기억  그날은 웃음과 즐거움이 훨씬  컸다. 노조를 만들기 위해 훨씬 이전부터 준비해온 동료들 노력에 숟가락만 얹었기 때문에 신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  조합원들은 손가락으로 브이와 하트를 만들었고, 마스크 탓에  보이진 않지만, 맞은편 담벼락에 올려둔 카메라를 보며 모두가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날 찍은 사진만 봐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모두에 대한 애정이 솟는다. 이런 감정이 '연대감' 아닐까.



노조를 만들었던 그날 예전에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 인기였던 드라마 <미생> 봤냐고 물어봤는데, 상대는 "1회도 채 못 봤어. 회사 생각이 계속 나서 힘들었다"고 했다. 당시 취직 경험 없는 학생이었던 나는 '드라마를 못 볼 정도로 회사 생활이 힘들 수 있는 건가'했다. 인턴 동기 대부분이 탈락한 전형에서 살아남은 그가,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회사를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그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는 회사 생활 때문에 병원을 다녔고, 경쟁을 부추기고 강요하는 회사의 시스템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우리 회사의 노조가 만들어진 날, 그에게도 연대할 동료가 있었더라면 회사에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노조원이 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저 회사 노동자들은 얼마나 힘들었길래 저렇게까지 할까',  '저쪽 사측은 어떨까?'생각하면서 다른 노동자, 노조에도 관심이 더 많이 생겼다.  


연대는 생각보다 빠르고 넓게 퍼진다. 언젠가 공무원 노조와 이마트 노조가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비판적 입장을 내놓은 적 있다. 이마트는 가습기 살균제 압수수색 당시 관련 정보가 들어있는 노트북을 숨기라고 지시한 임원이 여전히 재직하고 있는 건 "기업윤리 위반"이라고 했고, 공무원 노조는 "국민의 생명에 대한 1차적 보호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도의적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자기 조직을 비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노조가 앞장서서 그런 이야길 하는 게 용감하고 생각했고, 그 용기의 밑바탕엔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내 노조 일도 버거운데, 자기가 몸담은 조직을 비판하고, 조직밖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저 용기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아직 단협을 끝내지 못한 아기 노조의 아기 조합원(?)이지만, 짧은 경험으로 이유를 떠올려보면, 노동조합의 근간이 연대라는 걸 저들도 경험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연대에서 시작하고, 그런 연대의 마음은 내 일터뿐 아니라 내 일터가 뿌리내리고 함께 커 나가야 할 주변에까지 관심을 두게 만든다. 사내 괴롭힘이나 연차 사용에 있어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동료의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받으니 그 마음은 또다른 용기를 만든다. 이 마음은 또 더 멀리 퍼질수록 강해진다. 나와 회사, 동료에 대한 관심은 또 다른 회사의 동료들에 대한 관심, 나아가 사회 전반의 노동에 대한 연대로 확장될 수 있다. 혹여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버겁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간단하게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노조 가입은 그저 내 주변 사람들과 '힘들 때 이야기 들어주고 같이 해결방법 고민해주기' 같은 작은 약속을 하는 모임에 드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충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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